전기 가야 연맹의 해체와 관련하여 질문드립니다
전기 가야 연맹은 광개토대왕에 의해 해체된건가요..? 아니면 법흥왕에 의해 해체된건가요..? 자세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세기 중반 신라와 백제가 손잡고 고구려가 차지한 한강을 되찾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동맹군은 한강 유역을 되찾는 데 성공했지만, 신라가 백제를 배신하는 바람에 어렵게 되찾은 한강을 다시 잃은 백제는 대대적인 공략을 준비했습니다. 백제는 왜와 가야 세력까지 동원했으나, 성왕이 전사하게 되고 결국 패배했습니다. 이때 병사를 파견한 가야도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신라의 진흥왕은 대가야를 공격하여 멸망시켰습니다(진흥왕 23년, 562). 대가야가 망하자 나머지 세력도 같은 운명에 놓이게 되었고, 마침내 신라에 항복했습니다. 이것으로 가야 연맹은 500여 년의 역사를 마감하고 무너져내립니다. 금관가야와 대가야를 멸망시킨 신라는 가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낙동강이 두 나라의 경계선이었습니다. 가야와 신라의 문화는 큰 차이를 보였지만, 가야가 신라에 흡수됨으로써 결국 가야 문화가 신라 문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라, 가야를 정복하다 : 가야의 멸망 (고교생이 알아야 할 한국사 스페셜, 2009. 2. 5., 김아네스, 최선혜)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관가야는 현재의 경상남도 김해시 지역에 있었는데, 가락국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금관가야는 가야 연맹의 중심국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지만, 신라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법흥왕 대에 신라에 병합되었다. 금관가야의 국주, 즉 국왕이었던 김구해는 왕실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했는데, 이에 신라는 금관가야의 왕실을 신라의 진골 귀족에 편입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이후 김무력⋅김유신으로 대표되는 금관가야 왕실의 후손은 무열왕계와 결합하여 삼국 통일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