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82년 9월 수신사 박영효 등 일행이 인천에서 일본 배(메이지마루)를 타고 도일할 때 박영효가 당장 게양해야 할 국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메이지마루 배 안에서 그전에 이미 조정에서 대체적으로 정해진 국기 도안내용을 약간 고쳐(이미 1882년 5월 제작된 '이응준 태극기' 중 4괘(卦)의 좌,우를 바꿔 재도안했습니다) 태극사괘의 도안이 그려진 기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조정에서 1883년(고종 20) 3월 6일(음력 1월 27일) 정식으로 조선 국기로 채택, 공포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만들어진 태극기는 그 후 널리 보급되었으며,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발발하며 전국적인 만세 시위에 태극기가 사용되자 태극기는 항일 운동의 상징으로 각인되었습니다. 1919년 4월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하였으나 임정 수립 초기에는 태극기를 국기라 칭하지는 않고 단체의 깃발로 사용하다가 1942년부터 한국의 국기를 '태극기'라고 표현하기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