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는 어떻게 일본군에 의해 시해를 당할 수 있었던거죠?
안녕하세요? 조선의 비참했던 역사 중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들수 있는데요~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것은 한 국가의 왕비인데 호의무사들도 많이 있고 그랬을 텐데 어떻게 일본군이 궁궐로 들어 올수 있었으며 어떻게 시해를 당할 수 있었던거죠?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카모토가 이끄는 일본인 낭인들이 공덕리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쯤이나 흥선대원군이 교여를 타고 떠난 때는 새벽 3시경, 대원군은 그들이 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고있었고 일본인들이 담을 넘어 별장 경리를 모두 포박해 가두고 옷을 빼앗아 일본인 순사들이 덧입었는데 조선군으로 위장하여 함이었고, 오랜 실랑이 끝에 대원군이 집을 나섰고, 일행이 서대문에 이르렀을 때 우범선이 이끄는 훈련대 제2대대와 합류하나 그들은 그때까지 황후를 시해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잠시 귀 집경장소를 잘못 알아 엉뚱한 곳으로 갔던 140여명의 일본 수비대 제1중대 도착, 이때 경복궁에서 일본 수비대 제 3중대가 광화문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수비대 2중대장은 훈련대 제 2대대를 인솔하고 춘생문 부근에 집결, 그들은 새벽 2시경부터 미리 와서 경복궁을 포위하다 광화문 쪽에서 총소리가 들리자 사방에서 궁궐 담을 넘고 외전의 근정전 일원을 지나 명성황후가 거처하는 건청궁쪽으로 돌진합니다.
새벽 2시경 별군관에게 고종의 호위경관 2명이 달려와 삼군부에 일본군과 조선군 훈련대가 운집해있다고 보고, 현흥택정령은 즉시 궁궐 경비병 여럿을 광화문으로 보내 상황을 확인, 새벽 4시 무렵 조선군 훈련대 대대가 춘생문과 추성문을 포위하였다고 증언, 이때 경복궁은 경회루와 수정전 일대를 제외하고 근정전 일대를 포함해 광화문까지 총격전이 벌어져 광화문과 근정전을 포함해 난리가 난 상태로 이를 기회로 보고 일본군은 경복궁 곳곳을 뒤지가 건청궁 일대에서 명성황후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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