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조선의 정악, 아악, 향악, 당악 등의 음악과 이를 연주하던 국악인들을 배출하고 조선지역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설치한 기관으로,
1897년에 종래 장악원을 교방사로 개칭, 제조 이하 772인의 인원을 두었으며 1907년 교방사를 장악과로 고쳐 궁내부 예식과에 부속시키고 국악사장 이하 305인의 인원을 두고 김종남이 초대 국악사장이 되었습니다.
한일합방 이후 장악과는 아악대로 바뀌고 아악사장 이하 189인의 인원으로 줄었으며 이중 양악군악대에 밀려 시종원 부속 구 군악수인 최고수들이 일부 편입되었습니다.
그 뒤 84명, 다시 57명으로 줄였고 1917년 아악생 양성소를 두어 제 1기생 9명을 모집, 수업연한을 3년으로 하고 음악실기, 음악이론, 일반학과를 수업, 1920년 일본 음악학자 다나베의 건의로 1922년 당국의 보다 나은 지원을 받았으며 1925년 아악대에서 아악부로 명칭을 고치고 당주동 청사에서 운니동으로 이동, 광복 직전까지 종묘, 문묘 제향에 제례악을 연주, 아악생 양성, 아악 방송, 악서 및 악보 편찬, 악기 제작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