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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안경곰147
빼어난안경곰14723.06.15

조선시대에 상궁들이 했던 역할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에는 영의정, 좌의정 같은 고관대작들도 있었지만 궁에서 머무르면서 시중을 드는 내시나 궁녀들이 있엇잖아요. 그중에서 상궁이라고 불리우던 사람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상궁을 선발하는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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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15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궁은 고려시대에 처음 기록이 보인다. 즉,『고려사』 백관지에 내직(內職)으로서 현종 때 상궁(尙宮)·상침(尙寢)·상식(尙食)·상침(尙針)의 직이 있었다 하고, 또 현종세가에서는 22년 3월 궁인(宮人) 한씨로 상궁, 김씨로 상침, 한씨로 상식, 서씨로 상침을 삼았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자료가 없어 그 이상의 것은 알 수 없다.


    상궁제도는 중국의 수나라에서부터 시작되어 당·송·명나라에 이르기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다가 그 뒤 청대에 이르러 폐지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내명부제도가 정비됨에 따라 상궁은 궁관의 가장 높은 위치에서 궁내 사무를 총괄하였다.


    내명부는 크게 나누어 내관과 궁관으로 구분된다.『경국대전』에 따르면, 내관은 정1품의 빈(嬪)에서 종4품의 숙원(淑媛)에 이르는 여관으로서 왕의 측실(側室)이다. 궁관은 정5품의 상궁에서 종9품의 주변궁(奏變宮)에 이르는 여관으로서 그 칭호에 따라 직책이 나누어져 있었다.


    내명부제도는 1428년(세종 10) 3월 이조(吏曹)에서 당제(唐制)와 역대의 연혁을 참조, 정1품의 빈에서 정7품의 전정(典正)에 이르는 여관의 제와 그 직분을 상정(詳定)하여 계달한 것이 조선시대 여관제도의 근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뒤 약간의 첨설(添設)을 가해『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세종 때 제정된 상궁의 직분을 보면, 중궁(中宮)을 안내하고 사기(司記)·전언(典言)을 통솔했다고 하는데, 사기는 정6품 1인으로 궁내의 문부(文簿)와 출입(出入)을 맡고, 전언은 정7품 1인으로 선전(宣傳)과 계품(啓禀)을 맡는다고 되어 있다. 사기는『경국대전』에서 상기(尙記)로 바뀌어 종6품으로, 전언은 품질만 종7품으로 떨어졌다.


    상궁의 신분은 양인(良人)에 속하며, 원칙으로는 내관과 엄격히 구분되었다. 그러나 왕과 육체 관계를 맺게 되면 내관으로 승격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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