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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6.18

백제 패망후 의자왕은 중국에서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이것이 사실인가요

백제 의자왕 하면 삼천궁녀 와 백제 멸망인데요. 그가 죽은 곳이 중국이고 무덤도 중국에 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이것은 사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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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의자왕은 중국에서 죽었습니다. 중국의 낙양과 가장 인연이 깊은 한국인은 의자왕(義慈王)인데 한때 '해동증자'로 칭송받던 의자왕은 재위 16년째부터 사치와 방종으로 국정을 게을리하다 660년 나당연합군에 패해 당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삼국사기' 등에 따르면, 그는 태자 효, 왕자 융, 그리고 백성 1만2000여명과 함께 당으로 압송된 뒤 곧 병사했다고 합니다. 그가 묻힌 곳은 낙양 북쪽 망산(邙山)에 있다는 손호(孫皓)와 진숙보(陳叔寶) 무덤 옆으로 알려져왔습니다. 손호는 손권(孫權)의 손자로서 오(吳)의 마지막 왕이고, 진숙보는 남조 진(陳)의 마지막 왕으로, 둘 다 주색과 폭정으로 나라를 잃었다고 합니다. 당(唐)이 의자왕을 이들 옆에 묻은 것은 백제왕을 격하하면서 동시에 후세에 경계를 삼으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망산, 즉 북망산은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으로 시작하는 '성주풀이'의 노랫가사가 가리키는 곳이기도 합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당연합군에게 패배한 이후 의자왕은 왕후인 은고부인과 아들인 부여융, 부여효, 부여태, 부여연, 대좌평 사택천복 이하 신하 및 장수 93명과 백성 12,000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되어 수도인 장안에 이르렀다. 660년 11월 1일 장안에 도착한 의자왕은 부여융을 비롯한 왕자 13명, 대좌평 사택천복과 국변성 등 37명 등과 함께 조당에 나아가 당고종과 측천무후를 만났다. 당고종은 이들의 잘못을 크게 꾸짖은 후에 이들 모두를 사면하였다. 그러나 의자왕은 나라를 잃고 나서 심한 충격을 받아 망국의 회한에 괴로워하며 며칠만에 머나먼 이역 땅에서 한 많은 죽음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