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스만 제국은 14세기부터 발칸반도의 동유럽 국가들을 점령하고 있었는데 1877년 일어난 러시가-투르크 전쟁에서 러시아 제국에서 패배하여 발칸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대부분 상실합니다.
전후 1878년 베를린 회의의 결과로 세르비아 등의 동유럽 국가들은 독립한 반면 여전히 오스만의 지배하에 있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오스트리아의 점령을 받게 되었고, 1908년에 정식으로 오스트리아령에 병합되었습니다.
그러나 보스니아에 있던 세르비아 주민들은 이에 반발하고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민족 간 분쟁을 막기 위해 제국 내의 각 민족에게 자치권을 부여해주려 합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수준 높은 자치권을 획득한 오스트리아의 슬라브인들은 굳이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프란츠 페르난디난트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눈엣가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14년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는 보스니아의 슬라브인들을 규합하기 위해 6월 28일 사라예보를 방문하기로 했는데 이 날 성 비투스 축일이기도 하였습니다.
성 비투스 축일은 세르비아의 중요한 명절오 14세기 세르비아 왕국이 전쟁에서 패해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은 날이었고 이때문에 황태자 방문에 대한 세르비아의 반감을 더욱 커졌습니다.
결국 세르비아의 젊은 청년들은 황태자 부부를 암살 한 뒤 청산가리로 자결하려는 계획을 꾸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