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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팬더곰238
귀여운팬더곰23823.05.25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오게 된 것은 언제인가요?

과거에는 남자가 중심이 아닌 여성분들이 중심이 되었던 모계사회였다고하는데 어느순간 부계사회로 넘어온것 같은데 부계사회로 넘어오게 된 계기와 언제 이런 부계사회로 전환되게 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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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옛날 부족사회에서는 모계사회에 가까웠죠.

    그러다가 국가가 성립하고 사회가 발달하면서

    전쟁도 많아지고 법과 제도가 생기면서

    남자의 활동이 많아지고 힘이 강력해졌죠.

    예전엔 여자가 낳은 자식이 누구인지를 알기도 힘들었고 그렇게 중시하지 않았죠.

    그래서 여자들이 바람피워서 자식낳는 경우가 상당히많았죠.

    이 자식이 누구의 자식인지는 오직 여자만이 알고 있었죠.

    하지만 점차 사회가 발달하면서 여자의 외도를 감시하고 통제하게 되었죠.

    어차피 당시 DNA감식은 없었지만 점차 여자가 바람피기 힘든 시대가 되었고

    남자의 입장에서는 대체 여자가 낳은 자식이 누구인가를 따지게 되었죠.

    이렇게 남자의 힘이 강해지면서

    여자를 통제하는 통제와 감시책이 발달하고

    그러면서 부계중심사회가 성립되었죠.

    그런데 부계사회라고 꼭 전형적인 남성우위의 사회는 아니죠.

    그것은 대체로 대외적, 사회적 활동에 한해서였고

    가정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우열이 뚜렷하게 가려질 정도까지는 아니었죠.

    대체로 아버지중심의 부계사회였지만 여자들도 집의 주인이 될 수 있었고

    재산은 아들딸이 골고루 분배하고, 여자가 남자집에 시집가기도 했지만

    남자가 여자집에 장가가기도 했었죠(데릴사위라고 하죠).

    제사도 아들과 딸이 돌아가면서 지냈죠.

    심지어 신부측 집안이 막강하면 신랑이 호적을 파서 신부집안의 호적에

    집어넣기도 했었다죠.

    다만 머 관직에 나가거나 전쟁, 무역 등등의 바깥활동에서만

    여자에게 제한이 가해진 정도였다고 하죠.

    그러다가 유교, 특히 성리학이 널리 보급되면서

    전형적인 부계사회가 중시되죠.

    여자에게는 지조와 정절이 중시될뿐이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고, 강간당할 위기가 되면 은장도로 자결해야 되고,

    강간당하면 남자도 물론 잘못은 있겠지만 여자가 나쁜년취급을 받았죠.

    왜냐하면 자살해서 정절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임.

    심지어 일부 고지식한 양반들은 강간은 없다고 했죠.

    왜냐하면 여자가 호응하지 않으면 강간이 불가하므로

    분명 여자가 호응했을테니 그것은 강간이 아니라 화간이라고 하였다죠.

    조선의 오륜행실도인가에 보면 왜놈에게 강간당할 위기가 되자

    강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의 그림이 나오면서 칭송의 대상이 되었죠.

    하도 이런 게 유행하다보니까

    남편이 죽으면 따라죽는 과부가 열녀로 숭상되었고

    심지어 양반가에서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자기 집안의 과부에게 자살을 강요하기도 했었다죠.

    대체로 고려시대까지는 대체로 평등.

    조선전기에는 부계적 요소가 좀 더 심해졌지만 아직은 차이가 크지 않음.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후기에는 성리학적 질서가

    양민들에게까지 전파되면서 부계성리학시대의 전성기가 되었죠.

    딸은 사실상 재산분배에서 제외되기 일쑤였고, 조상의 제사는 감히 지낼 수 조차 없었으며,

    시집가면 그집 귀신이 되어야 했죠.

    또한 적서차별이 심해져서 서자와 얼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죠.

    홍길동이가 호부호형 허락에 감동먹은 시대가 바로 님이 질문한 시대에 해당하죠.


  • 부계사회로의 전환은 한국 역사에서 여러 요인과 시기에 따라 일어났습니다. 일반적으로, 부계사회는 가부장주의 사회로서 남성 중심의 가족체계와 가부장적인 가족 관계를 강조합니다.

    한국에서 부계사회로의 전환은 조선시대 후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여러 사회적 변화와 영향들이 작용하였는데,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일어난 변화입니다.

    여러 요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경제적 변화와 신분제도의 변화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삼포 왜란과 농민운동 등으로 인해 사회적 불안정이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전통적인 계층과 권력구조가 변화하였습니다. 또한, 이토록 저토록인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해 가부장적인 가족체계에서 가족 구성원의 경제 활동과 역할이 다양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이 점차적으로 가족 관계와 가부장주의 사회 구조에 변화를 가져왔고, 부계사회로의 전환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시기와 계기는 역사적인 연구와 학자들의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전환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부계 중심의 가족 제도가 더욱 강화되었다. 혼인 후에 곧바로 남자집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제사는 반드시 큰아들이 지내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었고, 재산 상속에서도 큰아들이 우대를 받았다. 처음에는 딸이, 그리고 점차 큰아들 외의 아들도 제사나 재산 상속에서 그 권리를 잃어 갔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는 양자를 들이는 것이 일반화되었으며, 부계 위주의 족보를 적극적으로 편찬하였고, 같은 성을 가진 사람끼리 모여 사는 동성 마을을 이루어 나갔다. 따라서, 이 때에는 개인이 개인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종중이라고 하는 친족 집단의 일원으로 인식되었다.

    -출처: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