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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름한칠면조122
갸름한칠면조12223.06.25

조선시대에도 깡패가 있었다는데 이게 사실인가요?

조선시대라고 하면 엄격한 신분 질서 아래에서 서민들은 양반의 눈치를 보느라 기도 못펴고 살았을 것 같은데 불량배인 깡패들이 있었다는게 너무나 신기합니다.

어떠한 시대 배경과 상황아래에서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깡패들이 설치고 다닐 수 있었는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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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검계(劍契)는 조선시대의 범죄 조직으로 어느정도 오래됐는지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숙종 시기 이후로 기록이 발견됩니다. 서얼이나 중인 등 출세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구성원으로, 원래 장례를 위한 향도계(香徒契)에서 변형되었다고 합니다. 항상 검을 차고 다니는 집단이라 검계라 불렸으며, 홍동계, 살략계라고도 불렸습니다.
    비슷한 성격을 가졌던 집단으로는 살주계(殺主契), 살반계(殺班契), 살약계(殺掠契) 등이 있습니다. 이쪽은 노비를 비롯한 피지배층 / 하층민이 중심이 되어, 주인이나 양반, 부패한 부자 등을 죽이고 일가를 약탈, 아녀자를 강간하는 것을 모의하고 실행하는 일종의 조폭 집단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검계나 왈자라는

    폭려조직이 있었습니다.

    한양 뒷골목을 주름잡은 이들은 도박장이나 기방(기생집), 술집 등 이권을 놓고 싸움질을 일삼았으며,

    검계라는 칼을 차고 다니는 무리라

    칭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84년(숙종 10) 일본에서 보낸 온 국서의 내용에 관한 소문이 퍼지면서 인심이 흉흉해진 틈을 타서 시중의 무뢰배들이 검계라는 계를 조직하여 만행을 저질렀던 사건이다. 이 국서란 1년 전인 1683년 12월 대마도주가 보낸 것이었는데, 그 내용은 명나라가 청에 멸망당한 후 대만에 근거를 두고 반청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던 정금(鄭錦)이 조선으로 쳐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기록에 보면, 이 근거 없는 말이 퍼지면서 조정이 발칵 뒤집혔고, 피난을 가기 위해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동남문(東南門)을 빠져나가는 자가 줄을 이으면서 백성들 사이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런 난리판에 무뢰배와 불만세력들이 모여 살략계(殺掠契), 살주계 또는 검계라는 계를 조직하여, 작당을 해서 피란인의 재물을 약탈하고 인명을 해치기도 하였다.


    이들은 밤에 남산으로 올라가 나팔을 불어 계원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하였다. 이에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이 이들이 장차 외적의 침입보다 더 큰 위협이 될 우려가 있으니 포청(捕廳)에게 잡게 하여 원배(遠配)하거나 효시(梟示)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상소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포도대장 신여철(申汝哲)에게 이들을 체포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 약 7개월간 붙잡힌 검계·살주계의 계원은 10여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들은 모두 창포검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계의 약조를 적은 책자를 발견하였는데, 그 약조에는 양반을 살육할 것, 부녀자를 겁탈할 것, 재화를 약취할 것 등이 적혀 있었다.

    출처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