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란 인물이 궁금합니다. 결국 거란을 이겼나요?
요즘 고려 거란전쟁이란 드라마가 재밌어서
강조란 인물이 선이 굵은 인물로 나오던데
강조는 결국 거란을 물리치고 고려를 구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 2차 여요전쟁으로 1010년 침공은 강조의 정변을 계기로 요 성종이 친정을 나서 강조가 이끌던 30만 고려군이 통주 전투에서 대파되고 그 여파로 개경까지 함락, 고려 현종이 몽진 하는 등 나라가 멸망 직전까지 갔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조는 고려 7대 왕 목종 당시에 서북면 도순검사로 근무하던 중 목종의 부름을 받고 5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향하던 중 목종이 죽었다는 거짓 보고를 받았으나 그럼에도 개경으로 진군하여 천추태후와 김치양을 제거하고 목종 또한 폐위시키고 대랑군을 8대 현종으로 옹립합니다. 이른바 강조정변을 일으킨 것입니다. 거란은 이를 빌미로 고려에 침입하였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신해야 했으며 강조는 전쟁에 패하여 거란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거란은 현종의 입조를 약속으로 군사를 물리칩니다. 그러나 현종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배압의 10만 대군으로 3차 침입을 해왔으나 귀주에서 강감찬 장군에게 대패하고 물러났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란은 강조의 변을 핑개로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2차 침략(1010)합니다.
그러나 거란의 진짜 의도는 고려와 송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강동 6주를 되찾으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거란군은 먼저 흥화진을 공격했으나 성주 양규(楊規)의 항전으로 함락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강조는 30만 고려군을 이끌고 항전하다 패배했으나 투항을 거부하다 죽게됩니다.
거란은 이어 곽주, 안주 등의 성을 빼앗고, 개경까지 함락하자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을 갑니다. 그러나 거란군은 개경의 함락에만 서둘러 흥화진, 구주, 통주, 서경 등을 그대로 두고 내려왔기 때문에 후방 공격에 취약하고, 병참이 차단되어 장기전에서는 약점이 노출될 수 있어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습니다. 결국 거란은 고려가 하공진(河拱辰)을 보내 화친을 청하자 현종이 친조(親朝)한다는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돌아갑니다.
결국 겉으로는 항복했으나 고려는 거란의 퇴로 도중 양규와 김숙흥(金叔興)이 기습하여 많은 피해를 입히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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