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요나라)은 세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거란의 3차 침략 때는 강감찬 장군께서 귀주대첩으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강감찬 장군이 대승을 거둔 귀주대첩은 거란의 역사서인 <요서>는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 위치가 한반도가 아니라 요서 지역, 즉 고려의 국경선이 요서군과 가까운 곳, 즉 요하(遙河) 서북부의 해안지대였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란의 소배압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자, 강감찬은 구국항전의 기치를 올리고 전쟁에 나섰습니다. 그의 나이 71세 때였습니다. 강물을 막았다가 거란 군이 강을 건널 때 물을 터뜨려 공격하여 대 승을 거둔 전투입니다.
거란은 강동 6주의 반환과 강조가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을 옹립했다는 빌미로 요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침입했습니다. 그러나 홍화진에서 양규 이수화 장군의 분전에 발목이 잡혀 진군을 못하자 홍화진을 비켜 개경으로 진군하여 현종이 나주까지 피신하게 됩니다. 요 성종은 현종의 출조를 약속으로 군사를 물리게 됩니다. 이후 거란은 현종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배압의 10만대군으로 3차 침입을 감행합니다. 이에 고려 현종은 강감찬을 상원수(총사령관)로 임명하니 70세의 강감찬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변에 위치한 홍화진에서 1차 결전에 대비합니다. 홍화진의 강 대천 상류를 막아 1만2천의 병사를 매복시킵니다. 거란군이 강을 건널 때 막고 있던 물꼬를 트니 거란군은 물살에 휩살려 죽게 되고 화살에 맞아 죽게 됩니다. 이후 거란군은 혼비백산하여 후퇴하게 되는데 귀주(지금의 평안북도 구성)에서 대첩이 벌어져 10만 대군 중 살아돌아간 이들은 수천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