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대첩'은 어디서 어떻게 거란을 물리친 전쟁인가요?
안녕하세요
요즘 고려거란전쟁에 푹 빠져있는데요
여기 나오는 강감찬 장군은 정종과 현종 년간에 살았던 인물로 1010년과 1018년에 걸친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영웅으로
알고 있는데, 가장 유명한 전투로는 '귀주대첩'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귀주대첩'은 어디서 어떻게 거란을 물리친 전쟁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란(요나라)은 세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거란의 3차 침략 때는 강감찬 장군께서 귀주대첩으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강감찬 장군이 대승을 거둔 귀주대첩은 거란의 역사서인 <요서>는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 위치가 한반도가 아니라 요서 지역, 즉 고려의 국경선이 요서군과 가까운 곳, 즉 요하(遙河) 서북부의 해안지대였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란의 소배압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자, 강감찬은 구국항전의 기치를 올리고 전쟁에 나섰습니다. 그의 나이 71세 때였습니다. 강물을 막았다가 거란 군이 강을 건널 때 물을 터뜨려 공격하여 대 승을 거둔 전투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란은 강동 6주의 반환과 강조가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을 옹립했다는 빌미로 요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침입했습니다. 그러나 홍화진에서 양규 이수화 장군의 분전에 발목이 잡혀 진군을 못하자 홍화진을 비켜 개경으로 진군하여 현종이 나주까지 피신하게 됩니다. 요 성종은 현종의 출조를 약속으로 군사를 물리게 됩니다. 이후 거란은 현종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배압의 10만대군으로 3차 침입을 감행합니다. 이에 고려 현종은 강감찬을 상원수(총사령관)로 임명하니 70세의 강감찬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변에 위치한 홍화진에서 1차 결전에 대비합니다. 홍화진의 강 대천 상류를 막아 1만2천의 병사를 매복시킵니다. 거란군이 강을 건널 때 막고 있던 물꼬를 트니 거란군은 물살에 휩살려 죽게 되고 화살에 맞아 죽게 됩니다. 이후 거란군은 혼비백산하여 후퇴하게 되는데 귀주(지금의 평안북도 구성)에서 대첩이 벌어져 10만 대군 중 살아돌아간 이들은 수천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 3차 여요전쟁 중인 1019년 2월 1일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로 초기 기선제압과 함께 유격전술, 청야전술, 망치와 모루 전술을 완벽하게 구사해 승리한 전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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