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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서주(三讓徐州)란 말이 있다. 이는 유비가 그의 첫 둥지이자 근거지인 서주를 맡는데 세 번이나 사양했다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도겸은 유비가 한 (漢)나라 황실의 종친이라는 사실과 인품을 알았습니다. 더구나 스스로는 늙고 병들었으며 두 아들도 무능하다고 판단하여 유비에게 서주를 맡아 조조를 물리치고 서주 백성들을 잘 이끌어달라는 당부했으나 유비는 사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유비가 조조의 2차 서주 공략을 물리치고 난 후 도겸은 유비의 공을 치하하며 또 서주를 맡아 줄 것을 당부하였으나 또다시 유비는 사양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겸이 임종을 앞두고 세 번째로 부탁하자 이때 유비는 세 번째 사양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겸이 죽고난 후 공융은 조정에 유비를 서주 자사로 천거했으며, 또 서주의 백성들과 도겸의 책사 미축 등이 유비를 찾아 와 서주를 맡아 줄 것을 청하자 승낙했습니다. 이로써 유비는 도원결의 후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의병으로 가담한 후 근거지도 없는 처량한 처지에서 10년만에 처음으로 이곳 서주에서 둥지를 트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