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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한거북이38
활달한거북이3823.12.07

조선시대에 민간신앙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불교, 도교, 유교, 천주교 등이 과거 조선시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인정되어 왔고, 지금까지 종교 등으로 승인되어

계승되어 오고 있는데요~!!

조선시대에 민간신앙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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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2.0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가 억압된 것과는 달리 무속신앙은 계속 번창되었으나, 금무라는 국가정책에 따라서 지나친 행동이나 무속이 표면에 나타나는 것은 다소 제한 되었다고합니다. 특히, 무격을 전담하는 관청으로서 성수청, 활인서 등이 있었고 또, 기우, 기은, 기자, 산천제, 성황제 등은 사제무가 맡아서 하였으며, 성수청과 활인서에 국무 또는 무녀를 두어 국민의 질병을 치료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간사의 길흉을 점치는 점복무가 크게 성행하였다고합니다. 산신제는 백악산, 송악산, 감악산, 삼각산 등 4악산의 산신단을 비롯하여, 전국의 주요 산들과 모든 마을에서 거행되었으며, 이 밖에도 천신, 삼해신, 칠독신 등이 있어서 무녀를 비롯한 기복자들이 즐겨 기도를 드렸다고합니다. 산신과 연관되어 암석신의 신령을 믿는 암석숭배도 토착화되었었고 대표적인 기자암으로는 경주 금오산의 산아당암과 상사암, 서울 자하문 밖의 기자암과 인왕산 선바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동물신으로는 산군이라 하여 산신으로 숭상하였던 호랑이를 비롯하여, 재산신으로 숭상되었던 두꺼비, 제주도 차귀당에서 제사를 지냈던 사신, 수신으로 받들어졌던 용에 대한 신앙이 크게 성행하였으며 수목 하나하나에도 신령이 있다고 보았으며, 특히 오래된 거목의 수정은 신수라고 하여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마을 안에 있는 거괴수는 당신목으로 숭상하였으며, 서낭당, 산신당, 장승 근처에 있는 수목들은 신목으로 인정되어 벌채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부근신은 부군신이라고도 하는데, 중종 때는 전국의 사내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대감신은 무격신으로서 전내대감, 토주대감 등 10여 종으로 분류되었고 풍신은 영동할머니로서 2월 1일 천계에서 지상에 하강하였다가 20일에 승천한다고 믿었으며 태자귀는 명두라고도 하는데 어린아이의 죽은 영혼을 신으로 삼아 점이 잘 맞는다고 하여 부녀자들이 많이 신앙하였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옛날부터 민간신앙이던 샤머니즘과 고려 이래의 풍수설(風水說), <정감록(鄭鑑錄)> 등의 참위사상(讖緯思想)이 조선 시대의 민간 신앙으로 전부 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가 억압된 것과 다르게 민간신앙은 계속 번창하였습니다. 금무라는 국가 정책에 따라서 지나친 행동이나 무속이 표면에 나타나는 것은 제한되었습니다. 특히 무격을 전담하는 관청으로서 성수청ㆍ활인서 등이 있었습니다. 또 기우 기은 기자 산천제 성황제 등은 사제무가 맡아서 하였으며 성수청과 활인서에 국무 또는 무녀들을 두어 백성의 질병을 치료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간사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복무가 크게 성행하였습니다. 여러 신에 대한 민간신앙도 고려 못지 않게 성행하였습니다. 영성단과 노인성당을 서울 남쪽에 두었고 함흥 남쪽에 제성단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산신제는 백악산 송악산 감악산 삼각산 등 4악산의 산신단을비롯하여 전국의 주요 산과 마을에서 거행되었으며 이밖에도 천신 삼해신 칠독신 등이 있어서 무녀를 비롯한 기복자들이 즐겨 기도를 드렸습니다. 동물신으로 산신인 호랑이를 비릇하여 재산신으로 숭상되었던 두꺼비 제주도 사귀당에서 제사를 지냈던 사신 수신으로 받들어졌던 용에 대한 신앙이 크게 성행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불교가 억압된 것과 달리 무속신앙은 계속 번창, 금무 라는 국가정책에 따라 지나친 행동이나 무속이 표면에 나타나는 것은 제한됩니다.

    기우 ,기은, 기자 , 산천제 , 성황제 등은 사제무가 맡았고 성수청과 활인서에 국무 또는 무녀를 두어 국민의 질병을 치료, 인간사의 길흉을 저및는 점복무가 성행합니다.

    건국 초 태조는 원단을 한강 서쪽에 설치, 천신에게 제사했으며 마니산에 단을 설치해 천신에게 제사지냈습니다.

    영성단과 노인성단을 서울 남쪽에 두며 태백성은 이성계가 즉위하기 전 빌었더니 감응이 있었다고 하여 등극 후 함흥 남쪽에 제성단을 만들어 매년 단오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산신제는 백악산, 송악산, 감악산, 삼각산 등 4악산의 산신단을 비롯해 전국의 주요 산들과 모든 마을에서 거행, 이 밖에 천신, 삼해진, 칠독신 등이 있어 무녀를 비롯한 기복자들이 즐겨 기도를 드렸으며 산신과 연관되어 암석신의 신령을 믿는 암석숭배도 토착화되었습니다.

    동물신으로 산군이라 하여 산신으로 숭상했던 호랑이를 비롯해 재산신으로 숭배되던 두꺼비, 제주도 차귀당에서 제사를 지낸 사신, 수신으로 받들어졌던 용에 대한 신앙이 크게 발달합니다.

    수목에도 신령이 있다 보고 오래된 거목의 수정은 신수라 하여 함부로 하지 못하게 했고 마을 안에 있는 거괴수는 당신목으로 숭상, 서낭당, 산신당, 장승 근처에 있는 수목들은 신목으로 인정되어 벌채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가택신들이 있고, 지신이라 불리는 토주신, 재산신인 사창신, 곡식을 관장하는 제석신, 부뚜막신인 조왕신, 문간의 출입을 단속하는 수문신, 변소의 신인 측신, 천연두 방지를 위해 모신 역신 등이 신봉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무속신앙은 계쏙 번창하였고

    산신제와 암석 숭배 등도 토착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