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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도화지113
하얀도화지11323.07.26

고려 청자 대비 조선 백자는 왜 이렇게 밋밋하게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고려 때 만든 고려 청자는 엄청 화려하고 기품있게 제작이 되었는데,

그에 반해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백자는 밋밋하고 아무그림도 없는 형태로 제작이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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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2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도공들은 뿔뿔히 흩어졌고 고향에서 도자기를 만듭니다. 하지만 왕실에서 청자에 맞는 흙과 가마를 제공받아 만든 도자기와 같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회색이나 회흙색의 태토위에 백토를 입혀 무늬를 새기고 유약을 발라 구워낸 분청사기를 만들어내게됩니다. 청자를 만들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기에 생긴 도자기이죠. 그러다 조선의 선비들이 분청사기보다는 깨끗한 백자에 매료되었고 청렴한 선비정신을 닮았다고 생각한 백자가 조선시대에는 유행하게 되었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청자가 화려한 귀족 중심의 문화의 상징 이라면 조선 백자는 소박하고 검소한 서미 중심의 문화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것 입니다. 또한 청자가 아름 다운 비취색과 각종 화려한 문양을 수놓았다면 조선의 백자는 아무런 장식도 없습니다. 이렇듯 도자기를 통해서 당시의 문화의 특색을 그대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색의 자기. 순백의 소지에 투명유를 바른 것이 이상적이나, 소지가 회색인 경우와 유가청 또는 황색인 경우는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중국 남북조시대 후기 (6세기)경에 출현하여, 당대에는 허난∙후베이 방면에서 많이 생산했고,특히 형주요가 유명하다. 송대에는 상아와 같은 색의 정요백자가 유명하며, 화남의 제요에서는 유가 청색을 띤 영청(청백자)이 양산됨. 원대 경덕진에서는 구부요라 부르는 백자가 제작되고 명대의 어기창에서도 아름다운 백자가 생산되었다. 원∙명대이후 백자의 유하에 무늬를 그린 청화(靑花)와 백자의 유상에 그림을 그린 오채(적화)가 성행하여 백자는 더욱 양산되었다. 명말~청시대 푸젠성의 덕화요에서는 백자의 인형, 문방구 등이 생산됨. 한국의 백자는 조선시대에 애호되었다.

    출처 : 미술대사전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이 들어서자 동아시아의 백자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며, 중국의 재료에는 미치지 못해 순수한 하얀 빛깔보다 쉽게 만들어 쓰는 내구성이나 소박한 멋으로 평가받는데 당초 백자가 발달한 배경에는 도자기 기술의 발전 이외에 사치를 싫어하는 유교 문화 바탕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백자의 특징은 달항아리에서 보듯이 기형이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이 강조되었습니다.

    실용적이고 기능적이라는 점과

    단순간결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문양이 조선 백자의 특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