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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절부절하다와 안절부절못하다란는 말은 왜 같은 의미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선, 안절부절 "못"하다 쪽이 표준어 입니다.어쩌다가 부정(안절부절=안정되지 못함)에 부정(못)을 더해서 긍정(안정됨)이 아니라 부정이 되었는진 알 수 없지만언어는 생각보다 대충 만들어 지기 때문에 이런 식의 오류는 자주 있습니다아예 단어 하나로 이런 경우도 있지요모순어, Contronym 라고 하는데 특히 영어에 많습니다Sanction은 허가하다, 제한하다의 뜻이 있고OVERLOOK은 감독하다와 깜빡하다를 동시에 뜻합니다.한국어로도 "헬스장을 끊었다" 라고하면이게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한건지 다니다가 그만둔건지 알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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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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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이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은 사고(판단과 개념)의 참과 거짓을 확인하기 위해그 사고방식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형식에 따라 구분하는 논리학 입니다.삼단논법은 기본적으로 매우 간단합니다."A⊂B이고 C⊂A이면 C⊂B다" 이게 삼단 논법이에요예시: "개는 동물이다. 푸들은 개의 일종이다. 푸들은 동물이다"여기서 조심해야 할것은 =가 아니라 ⊂ 라는 점 입니다.부분집합. 그러니까 기호 오른쪽이 왼쪽의 안에 속하고 있어야 해요예를 들어빨강은 색이다. 색중에는 파랑이 있다. 파랑은 빨강이다라는 문장은 언듯 보면 3단논법이 맞는 것 같지만사실 "A⊂B이고 C⊃B 이면 C⊂B다"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틀린 문장이 됩니다.
학문 /
철학
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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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령대군은 정치에는 관여하지않았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관여 안했구요,효령에 관해선 가끔 잔치를 벌였다, 어디 절에 기부했다 정도의 기록만 있습니다.사실 그부분은 양녕이 이상한 겁니다.종친으로써 왕권에 관여한단 것은목숨을 내거는 행동이었어요. 그러다가 자기가 밀어준 왕이 밀려나기라도 하면바로 반역자로 찍혀서 사형당할 태니까요.실제로 조선의 반란 역사를 살펴보면자기는 가만있다가 개 뜬금없이 반란군들이 왕만들어 준다고 날뛰어서사형 또는 유배당하는 종친들이 많습니다물론 흔히 말하는 "줄대기" 정도는 다들 했지만양녕처럼 대놓고 말하고 다니는 건, 원래 망나니인 인간이세종의 형이라는 남의 후광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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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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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상학파는 대부분 노론세력에서 나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상학파는 혁신적인 계층 중에서도 본인이 기득권세력이라여러 정보와 선진문물에 접하기 쉬웠던 사람들이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자는 의미에서 상공업 진흥, 기술 혁신, 대외 무역 중시를 주장한 것이고중농학파는 이미 권력에서 밀려나버린 남인들 사이에서그냥 나라의 뿌리는 농업이라 부패한 자들이 가장 잘 빨아먹는 것도 농업이니다 갈아엎어버리자는 뜻에서 농업에 관한 100%개혁을 주장한 학파입니다이름만 비슷할 뿐 둘은 전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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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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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옛날 사람들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에 민감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살아남기 위해서 입니다지금처럼 추우면 패딩입거나 히터 키고더우면 얼음 사먹을 수는 없으니까요농사던 사냥이던 직접 움직여서 식량을 찾아야 했으니해의 밝기부터 계절에따른 날씨 차이까지 전부 생명에 영향을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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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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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은 왜 왕이 못되고 폐위됐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연산군은 왕입니다?아마 종,조의 묘호를 못받은걸 물어보시는거 같은데정치적으로 묘호를 못받은건 광해군이고역사적으로 묘호를 못받은건 노산군(단종)이죠단종은 처음엔 노산군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어릴때 반란당했으니 불쌍해서 단종이란 이름을 나중에 받은 것이구요연산군은 그런거 없이 100% 순악질 망나니 쓰레기라 못받은 겁니다그래서 조선왕조 실록에도 공식시호인 연산군보단 폐주(廢主)', '폐왕(廢王)', '폐조(廢朝)같은 "쫓겨난놈"을 뜻하는 단어가 더 자주 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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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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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애의 난 당시에 이시애는 왜 항복하지않았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애초에 세조는 권력에 눈이 멀어서 자기조카를 내쫓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뒷말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그래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숙청과 억압을 계속 했고그 과정에서 이시애가 속한 북도차별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난이 일어난 것입니다조카도 죽인 놈이 용서해 준단 말을 해도 믿을 수가 없고,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유교 선비로써 이미 세조가 잘못한 것이란 기치를 내서웠는데 그걸 살겠다고 버린다면가문 전체에 똥을 칠하고서 대대손손 놀림거리가 되기 때문에 항복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거기에 조선은 건국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모든 가문이 많아봤자 할아버지 대 쯤 되면조선사람 아닐때가 되기 때문에이시애도 항복해서 욕먹느니 그냥 조선 버리고 할아버지 친척 여진족 한테 가는게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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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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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왜 북진정책을 추진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에는 농업=국력 이었으니 나라가 크기 위해선 땅이 많아야 했습니다그런데 동,서는 뭐 말할 것도 없고남쪽으론 이미 세종때에 대마도까지 먹었다가 행정력이 모자라서 풀어줬었는데일본을 지배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으니당연히 땅을 더 가지려면 북쪽으로 가야 했죠.물론 중국대륙에 큰 나라가 많았으니 청이던 명이던 사대 주의 자체를 버릴수는 없었지만가능만 하다면 언제든지 북쪽 땅을 누구꺼던 상관없이 먹으려 했습니다.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한반도는 동쪽 구석에 있었으니까요중앙에 뭔일 생겨서 바쁘면 그런 구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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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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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교황의 황제 대관식을 치룬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물론 교황의 여전히 영향력은 높았지만교황이 자기 맘대로 왕도 갈아버리거나 십자군 전쟁을 벌이는 전성기에 비하면 시들 했죠성직자가 왕의 대관식을 치뤄주는건 고대 로마시절부터 이어진 유럽 전통이고왕의 권력이 강할 수록 높은 성직자가 참가해야 했으니교황이 참가함=내가 유럽에서 제일 잘나가 라는 표현이구요나폴레옹은 평민출신이면서 혁명을 통해 기존 왕실을 갈아버리고 자기가 올라간 것이기 때문에이런 사소한 전통도 모두 지켜가면서 자기도 귀족이 될 가치가 있다는 증명을 하려 한 것입니다.간단히 비유하자면외국인이 한국에 귀화하고 싶다면서 한복을 입고, 제사를 지내고, 한자공부 하고 그러면진짜구나 싶겠죠? 이거랑 같은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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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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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자 베토벤이 싫어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건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혁명에 동참해서부패한 왕실과 귀족을 치워 버렸기 때문인데그 치워버린 왕실보다 높은 황제라고 자칭하기 시작했으니프랑스 혁명에 긍정하던 베토밴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은당연히 나폴레옹을 혁명의 배신자라 부르며 싫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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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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