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는 카톨릭이 아니라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상화 부분은, 다른 기독교 종파들도 마찬가지니 정교회만 잘못한게 아닙니다.물론 아무 상징없이 믿는게 최고지만아무래도 사람이란게 눈에 보이는 뭔가가 있어야 믿음이 생기는 동물이니까요중세시대에 종교화가 얼마나 많이 그려졌는지 생각해보면...그리고 지성소 개념이 남은것은 카톨릭도 마찬가지 입니다.회중석과 제대 사이에 난간이 남아있죠기독교는 유대교에서 파생된 거니까 초기 기독교는 당연히 유대교랑 비슷했겠죠?정교회는 "전통적인 문화를 보존'한단 의미에서 지성소 처럼 성화대 쪽을 가려두고그림을 사용 한거고카톨릭(천주교)은 기독교만의 발전과정을 거쳤으니까 작은 가림막 수준의 영성체 난간으로 간략화 되고 십자가에 예수님이 조각되어 있으며개신교 쯤 되서야 제대외 회중석 사이에 아무것도 없고 십자가는 기호 로만 쓰여지는 겁니다셋중에 뭐가 더 나은 건가? 그런건 따질 의미가 없죠. 그냥 종파 특성이니까지성소 있는 개신교종파도 있어요애초에 예수님이 직접 지성소 철거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예수님의 첫 죽음때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이 찢어졌다 라는 묘사가 있고이부분을 신학자들이 연구하면서 확대해석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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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융커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융커는 단순 귀족이 아니라 군사귀족입니다융커는 엄청나게 넒은 땅과 군대 지휘관 자리 독점이라는두가지 기득권을 이용해서 권력을 유지한 집단이었습니다산업혁명 전에는 나라의 산업=농업 이었고군대는 뭐, 당연히 중요하니까이 둘을 다 잡은 융커들은 매우 엄청난 권력을 자랑했지만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자기네 땅 지키겠답시고중요한 전투에서 병력을 빼먹거나 하는 등 썩어 빠진 모습을 보였으며바이마르 공화국과, 특히 평민 병사 출신이라 융커를 매우 싫어하던 히틀러 체제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몰락 했지만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그래도 돈이랑 인맥이 남아있기 때문에히틀러도 그냥 마구잡이로 처형하면 나라가 무너진다고 판단해서융커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그후로도 농업의 몰락이나 사회주의 혁명 등을 거치면서현재는 그냥 한국에서 우리 선조가 선비다 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수준의 영향력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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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가운데 열사와 의사의 호칭 차이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열사는 정신적으로 싸우다 가신 분들이의사는 무력적으로 싸워 전사하신 분들이 받은 겁니다.유관순 열사님은 일제의 고문에도 굳세게 버티시며조선독립의 열망을 증명하셨으니 열사안중근 의사님은 이토를 총으로 암살 하려 했으니 의사인거죠참고로 둘중에 뭐라하기 애매하거나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지사' 라는 호칭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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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의 '휘,호,자,시호,묘호,존호' 설명좀...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유교 문화권에선 본명을 함부로 부르면 실례이기 때문에 이름대신 쓰는 별명이 다양하게 있는 것입니다.휘: 본명자: 남자가 성인이 된 이후에 받는 윗사람(임금 스승 부모 등)이 만들어 주는 이름공식석상에서 주로 쓰임호: 닉네임 같은 것. 자는 공식적인 일을 위한 예절의 일부익 때문에편한 사이 끼리 친하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아무나 부를 수 있음정리하자면 호: 친구끼리 쓰는 별명자: 김과장님, 박선생님 같은 정중한 표현입니다존호: . 군주와 그 일가를 살아있을 때 부르는 말시호: 존호의 일종. 왕족, 귀족같은 높으신 분들이 "죽은 후에"그 행적을 평가하면서 붙여주는 존호. 죽은 이후에는 호칭을 시호로 통일함묘호: 시호 중에서 왕 이상 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시호원래는 왕중에서도 특별히 잘한 사람만 받았지만조선시대 때는 어지간하면 다 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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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문화가 신라에도 영향을 끼쳤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서양식 뿔잔모양 신라 조각이나 각각 금과 유리로 된 물병등 두 나라에서 비슷한 모습의 유물이 있구요쿠쉬나메 라고하는 페르시아 서사시가 신라(진짜 신라라고 읽음)라는 천국같은 나라로 피난가는 왕자의 이야기인데당시 한반도 신라 고증이 잘 되어 있어서 두 나라 사이의 교류의 증거로 쓰이고 있습니다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처용"이 검은 피부를 지닌 이방인으로 묘사되어처용이 중동, 특히 페르시아인이라는 주장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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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3세는 어떻게 람세스 3세가 된 건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름은 꼭 자식한테만 물려주는게 아닙니다전대 교황의 이름도 베네딕토 16세죠. 교황은 결혼도 못하는데왕이나 교황처럼 그 자리에 오르면서 새 이름을 받는 경우에는위대한 어느 선조의 발자취를 따르겠다는 의미로선조와 같은 이름을 쓰곤 하는데, 누가 누군지 구분해야 하니까이름 뒤에 숫자가 붙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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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시아권이 아닌 사람들은 젓가락이 아닌 포크를 사용 햏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여러가지 설이 있지만제일 유력한 것은서양은 스푼이나 포크도 중세 후반부 이후에나 전국적으로 쓰여질 정도였는데빵이나 고기처럼 손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주식이고 밥이나 국수류는 잘 먹지 않았기 때문에굳이 쓰는 방법이 복잡한 젓가락이 개발될 이유가 없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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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왕 2세라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 사람?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관련 기록이 모두 사라져서 본명을 알 수 없고초상화 이름(휘) 있여야할 부분에 전갈모양 상형문자가 있어서전갈왕 이란 이름만 남은 것 입니다2세 인건 그 초상화 보다 오래된, 전갈 상징 많은 파라오 무덤이 있기 때문이구요실존인물인지 아닌지, 실존인물이면 이름이 알려진 사람중 하나인지아니면 완전 새로운 인물인지현재 남은 기록으론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이런일은 이집트 역사에선 흔한 일로더블 팔콘, 크로커다일, 핑거 스네일 등등의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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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과 곽사가 헌제를 순순히 낙양으로 보낸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런적 없습니다정사던 연의던 이각과 곽사는 헌제가 없으면 자기들 죽는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으며둘이서 권력 투쟁 하느라 서로 싸우던 도중이라 헌제가 탈출에 성공한 것이고헌제 탈출을 알자마자 바로 화해해서 둘이서 같이 추적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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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국옥새는 어디로 사라졌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무도 모릅니다추측할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으며애초에 전국옥새는 정통성을 위해 각 왕조가 그럴듯한 도장 만든다음이게 전국옥새라고 프로파간다 한 거란 주장이 고대에도 있었을 만큼실존여부가 불분명한 물건이며설령 있었다고 해도 수백 수천의 전쟁들과특히 문화대혁명 때문에 파괴되었을 거란 것이 정설입니다일단 전국옥새가 공식적으로 실종된 이후에는여러 왕조가 각자 옥새를 만들었고이중에서 원나라에서 만든 대원전국옥새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대만에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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