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선 지금의 휴게소는 어느곳에서 역할을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미 삼국시대에 역참또는 역원이 있었다고 전해지며고려시대에 전국으로 확대되어서 조선시대까지 유지되었다고 합니다역참은 "공공기관"으로 일반인이 아예 못쓰는건 아니고조선시대까진 밤에 돌아다니는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일단 여관업도 하긴 했지만주요 업무는 말을 키우고 관리하고 대여하는 것이었으며이 말 대여 서비스는 관리들 전용이었다고 합니다.그리고 조선 중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 술과 음식, 그리고 숙박을 제공하는 업체인주막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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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서강에 대한 개항에 거부감이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총말씀이신가요?물론 일본도 반발 투성이였습니다흑선도착전까진 데지마라는 작은 인공섬에서 한 나라의 사람하고만 교역했고이 데지마도 열렸다 닫았다 했습니다.다만, 무역이 이득이 될 수 있는건 사실이고고려시절의 활발한 무역을 중국의 해금령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조선과는 다르게(고려,신라시절엔 페르시아랑도 교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한국은 영어로 고려=코리아 인거죠)섬나나라서 해금령의 영향도 적고 해류도 배타고 다니기 좋아서딱 한곳이나마 개항을 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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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은 기생이 아니라는데 왜 기생 이미지가 있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어우동은 유교질서의 금기중 하나인 간통사건을 일으켜서가문에서 파문당하여 별명인 어우동만 남은 것이며그것도 그냥 간통이 아니라 남자만 10명이 넘는데다왕족부터 노비까지 사람도 안가렸기 때문에저정도면 그냥 기녀 아닌가?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불륜무고죄로 이혼당한게 한이되서 이랬단 설이 강합니다)그리고 어우동이란 존재를 세간에 널리 알린 방기환의 소설에선 이점에 착안해서아예 기녀로 등장하기 때문에 현재에도 기녀 이미지가 있는 것 입니다
5.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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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포도주나 과일주는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복분자주가 바로 전통 과일주입니다하지만 한국 전통 베리류들은 당도가 부족하고한반도 날씨도 온도차가 심했기 때문에쌀을 넣지 않으면 발효가 똑바로 되지 않아서대부분의 과실주가 쌀누룩에 과일즙을 섞는 혼합주의 형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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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레오나르도다빈치는(참고로 다빈치는 [빈치출신이다] 란 뜻이고 원래는 그냥 레오나르도가 이름이라고 합니다)다재다능한 천재로써 여러 분야에 업적을 남겨 르네상스의 상징으로도 불리는 인물입니다어릴때 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여 14살에 그림공방에 들어갔고 실제로 작품중에선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 같은 그림이 제일 유명하긴 하지만, 사실 생전엔 미완성 된 그림이 더 많았으며당대에는 다연장 총이나 투석기 같은 무기발명이 더 유명했고(그런대 본인은 평화주의자 였단 점이 인상적이죠)높이뛰기, 검술 같은 신체활동도 자주 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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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장례는 신분에 상관없이 치러졌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장례와 효도같은 유교적 행사는 조선에선 인간이라면 다 해야하는 의무같은 느낌이라하는 것 자체는 집도없는 거지가 아닌이상 누구나 하는 것이었지만당연히 부자일 수록 장례식도 화려했습니다.고려시대엔 불교식 화장을 주로 했으며, '요즘애들은 상복을 입고서 놀러다녀서 걱정이다'같은 기록이 있는 것을 봐최소한 조선시대보다는 대충 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그래도 장례 못하는 집에 지원금을 줘야한단 기록도 있으니 중요한 행사였긴 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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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는 불교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도교는 고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춘추전국시대에 만들어진 무위자연을 추구하는 도가사상에 여러 토속신앙이 섞여서 태어난 것이며삼국지의 태평도와 오두미교가 기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불교는 인도에서 만들어진 종교로인도 힌두교의 환생이나 아수라같은 요소가 많이 들어있지만영원한 환생을 통해 계급제도를 유지하는 힌두교에 반대해서해탈이라는 환생에서의 탈출을 주장했기 때문에인도에서 쫓겨나 중국지방에 정착한 것 입니다여기에 유교를 더한 유불도의 삼종교는동아시아 지방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며 경쟁적으로 발전해왔고대부분 동아시아 나라에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도교가 없어보이는 한국에도 음양오행 같은 도교문화가 남아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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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최초로 입국한 외국인은 어느나라 누구인지 역사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록상 최초의 외국인 방문은 1604년 6월15일 통영 앞바다에 표류되어온 지완면제수(추정 주앙 멘데스)라는 포르투갈 사람이고그 다음은 하멜 표류기라는 책을 만든 네덜란드인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한 1653년입니다.하지만 신라유물이 페르시아 지방에서 발견된 것을 볼때삼국시대에도 해외 교류가 있었지만 기록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추정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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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이 배우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소룡은 원래 연기자였고 무술창시는 연기자로 성공한 다음에 했습니다어릴때 허약한 체질이라 운동겸 영춘권을 비롯한 여러 무술을 익혔었지만끈기가 없어서 마스터한 권법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애들 패고 다니는 정도?오히려 경극배우인 아버지의 인맥으로 TV아역으로 출연해 유명해지는 등 연기에 재능을 보였으며미국으로 건너간 뒤엔 인종차별 때문에 취업을 못해서 연기의 길을 포기할 뻔 했지만우연히 가라테 대회에 시범역으로 출연했다가 윌리엄 도지어라는 감독이 캐스팅해 갔고그것을 계기로 구식인 중국남파권법에서 벗어나 복싱, 유도, 가라테등 여러 무술을 배우며액션 실력을 계속 키워나간 것입니다.이때 도장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미국에선 연기자로 성공할 수 없어서 홍콩으로 귀국했고이미 성공한 배우가된 30대가 되서야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총정리해서 절권도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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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빙고와 서빙고는 용도가 달랐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서빙고가 제일 크고 동빙고가 제일 작았으며얼음의 질은 반대로 동빙고가 최고 였다고 전해집니다.그래서 동빙고 얼음은 귀중한 제사용이었고서빙고얼음은 일반백성이나 죄수도 운좋으면 받을 수 있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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