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도 이혼을 할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도 이혼제도가 존재하였지만, 일반적으로 남성중심의 이혼제도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https://www.culture.go.kr/cultureissue/issueView.do?seq=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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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는 어떻게 만들어 진건가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결국 농경사회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VdkVgwKey=11%2C00310000%2C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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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을 왜 고려몽둥이라고 부르나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가오리방쯔(중국어 정체자: 高麗棒子, 병음: Gāolí bàngzi)는 한국식으로 읽으면 고려봉자(高麗棒子),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고려몽둥이', 의역하면 '고려놈'이라는 뜻입니다.자료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 중국 대륙을 침략한 일본 제국의 앞잡이 구실을 했던 몽둥이를 든 조선인들을 부른데서 유래되었다고 보기도 하며, 본디는 조선 시대에 널리 입었던 저고리 등 조선식 복장을 이르는 말이었다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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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왕의 이름뒤에 붙는건..?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ㅇ조, ㅇ종으로 끝나는 것은 임금이 죽은 뒤 종묘에 모실때 사용된 묘호를 말합니다.자료에 따르면 '조'와 '종은 다음과 같이 붙여졌다고 합니다.조나 종을 쓰는 데는 꼭 일정한 원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대체로 조는 나라를 처음 일으킨 왕이나 국통(國統), 즉 나라의 정통이 중단되었던 것을 다시 일으킨 왕에게 쓰고, 종은 왕위를 정통으로 계승한 왕에게 붙였다. 이와 같이 조가 창업이나 중흥의 공업(功業)을 남긴 왕에게 붙인다는 원칙 때문에, 은연중 종보다 조가 격이 더 높다는 관념을 낳게 하였다. 조선조에 있어서 조의 묘호가 많은 까닭도 이러한 관념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묘호(廟號))]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8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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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운동인 태권도는 어디에서 유래된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태권도라는 말 자체는 '택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많다고 합니다.우선 '태권도'라는 명칭 자체가 이승만 대통령이 태권도 시범을 보고 “택견이구만”이라고 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정설로 인정받고 있으먀기술이나 용어에서도 '두발당성', '칼재비' 등이 택견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태권도의 역사에 관하여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https://www.kukkiwon.or.kr/front/pageView.action?cmd=/kor/information/history_taekwo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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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과 성탄절은 쉬게 된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성탄절은 1949년 정부 수립 후 최초로 지정된 공휴일 중 하나로 매년 꾸준하게 휴일로 지내고 있는데, 부처님오신날은 1975년이 되어서야 공휴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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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벽에 대해서 궁금한데 알수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예루살렘의 성전산과 유대인 구역 사이에 위치한 옛 예루살렘 성전의 일부이자 유대인의 성지를 말합니다.통곡의 벽의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3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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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시험은 매년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은 정기시와 부정기시로 나눠져있으며, 정기시는 3년에 한번 열렸다고 합니다.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조선시대 과거에는 소과·문과·무과·잡과의 네 종류가 있었으며, 또한 정기시(定期試)와 부정기시(不定期試)의 구분이 있었다.정기시는 3년에 한 번 열린 식년시 하나밖에 없었으나, 수시로 열린 부정기시는 증광시(增廣試)·별시(別試)·알성시(謁聖試)·정시(庭試)·춘당대시(春塘臺試) 등이 있었다. 이 중 식년시와 증광시는 소과·문과·무과·잡과가 모두 열렸으나, 별시·알성시·정시·춘당대시는 문과와 무과만이 열렸다.시험 시기는 식년시를 예로 들면 처음에는 모든 시험을 식년(子·卯·午·酉) 정월에서 5월 사이에 거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향시인 초시에 합격한 자들이 서울에 올라와 복시에 응시하는 데 기간이 촉박하였고, 또 농번기에 수험생들의 왕래가 빈번하여 농사에 방해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리하여 1472년(성종 3) 초시를 식년 전해인 상식년(上式年) 가을에, 복시를 식년 봄에 거행하기로 하였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거(科擧))]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4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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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력이리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마을사람들이 길흉사가 있거나 일손이 모자라 가사가 밀려 있는 집을 위하여 무보수로 노동력을 제공해 주는 협동 관행을 뜻합니다.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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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보신각에서 치는 재야의 종소리는 어디서 유래가 된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사에 따르면 재야의 종소리 행사는 다음과같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제야(除夜)는 '섣달 그믐날 밤'이라는 뜻으로 제야의 종은 '섣달 그믐날 밤에 울리는 종'이다. 이는 불교 사찰에서 중생들의 백팔번뇌를 없앤다며 108번의 타종을 하던 불교식 행사에서 유래했다.광복 이후 끊겼던 제야의 종이 다시 울린 것은 1953년 연말이었다. 한국전쟁 난리통에 완전히 파괴됐던 서울 종로 보신각이 그해 복원된 것을 계기로 연말 타종 행사가 재개됐다. 이후 제야의 종은 매해 12월 31일에서 이듬해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보신각종을 치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보신각 타종은 조선 시대 한양 도성의 4대문을 열고 닫는 새벽 4시(오경)에 33번, 밤 10시(이경)에 28번의 종을 쳐온 것에서 유래했다. 현재 제야의 종은 33번 울리는데 이는 불교 수호신이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무병장수·평안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26F1XRZR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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