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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은 왜 대부분 산에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찰은 본디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도 많이 있었고, 승려들의 수행과 정진을 위해서 고즈넉한 산 속에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 중기 정도까지는 그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말에 너무 비대해지고, 나라의 존폐까지 흔들리게 했던 불교가 배척받기 시작했고,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 세력이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를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면서,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찰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특히 주거지와 가까이 있던 사찰들이 사라지거나 산 속으로 옮겨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종교 사원들은 사람들이 사는 중심에 위치합니다. 그래야 널리 포교하기도 좋습니다. 수행이라는 이유로 고즈넉한 곳에 있는 사찰도 필요하겠지만 종교의 목적 중 하나인 선한 영향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속세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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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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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의 색이 왜 나무마다 다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단풍은 식물의 잎에서 화학적,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 녹색의 잎이 적색, 황색, 갈색 등으로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각기 다른 색깔이 나타나는 이유는 잎에 있는 색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붉은 잎은 녹색을 띠는 색소인 클로로필이 분해되어 붉은색 색소인 안토시안이 형성되면서 생기고 노란 잎은 카로티노이드 색소에 의해 생기며, 카로티노이드 색소는 봄에 클로로필과 함께 만들어져 잎 속에 들어 있지만, 그 양이 적어 녹색에 가려있다가 가을에 클로로필이 분해되면 노란색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갈색 잎은 탄닌성 물질에 의해서 나타나며, 붉은 잎에도 타닌성 물질과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어느 정도 들어있어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 냅니다. 둘이 조화롭게 섞이면 주황색을 띠기도 한답니다. 단풍색깔을 나타내는 색소는 노랗고 오렌지색을 띠는 카로티노이드(carotenoids)와 붉은색을 띠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s) 색소가 주입니다. 하지만 노란 카로티노이드와 오렌지 카로티노이드도 있습니다. 이른 봄, 어린 잎이 날 때부터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만들어지는데, 여름에는 엽록소의 녹색으로 덮어 가려지기 때문에 그 색깔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지면서 엽록소가 분해됨에 따라 노란색이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죠.즉 가을이 되어 잎이 노화되어감에 따라 어떤 나무 종들의 녹색 엽록소는 파괴되기 때문에 숨어있던 오렌지색이나 노란색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즉 늙어가는 것입니다. 인생과 비슷하니 나이 들어감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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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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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군대는 언제부터 총을 소지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 나라에서 총을 처음 제조한 시기는 고려 말엽인 1377년(우왕 3)경으로, 최무선(崔茂宣)의 건의로 화약무기 연구와 제작을 맡은 화통도감(火熥都監)이 설립되면서 중국의 것을 모방하여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름은 승자총통으로 최소의 개인화기이나 지금의 방아쇠 방식이 아닌 많은 화약을 넣은 후 심지에 불을 붙여서 발사되는 방식이라 준비시간이 많이 걸려 조준이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방아쇠 방식은 조선 중종 당시 개발하였으나, 활이 주력이었기에 대량 보급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선견지명이 있어 대량보급하여 전력화했더라면 임진왜란 때 왜의 조총과 맞서서 싸우기 좋았을 것입니다.
학문 /
역사
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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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도 자격이 있어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자격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화가로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미술대전 같은 공모전에 입상하여 이름을 알리던가, SNS 등 매체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면서 대중들에게 인정받아야 작품의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미술협회나 갤러리 등에 소속되어있는 작가라면 더 홍보하기는 편할 것입니다. 보통 작품에 대한 입소문이 나던가 행사 등에 출품하던가 해서 주목을 받게 되면 갤러리와 일종의 계약 관계가 이루어져 그들을 통해 작가가 홍보되고 가치가 업그레이드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상업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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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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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시와 같은 짧은 문장글이 해외에도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연히 있습니다. 시는 어느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한 형태입니다. 소설, 희곡, 시 등 지역이나 국가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외국에도 유명한 시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 애드거 앨런 포, 미국계 영국 시인인 T.S 엘리엇, 이탈리아의 에우제니오 몬탈레, 프랑스의 샤를 보들레르, 아일랜드의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이 유명합니다. 서정적인 시를 느끼고 싶으시다면 아일랜드의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집 <첫사랑>을 추천드리고, 현대시의 백미라고도 하며 조금은 심오하고 그로테스크적인 느낌의 시를 읽고 싶으시다면 프랑스의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꽃, 파리의 우울>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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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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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여와 결핍의 차이가 정확히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결핍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부족하게 된 것을 말하며, 원래는 있었으나 그 양이나 정도가 줄어든 것을 말합니다.결여는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란 것으로 원래 있어야 하는 자리에 빠져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결여는 욕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성질들에 해당되는 것이 많습니다. 두 단어는 사실 유의어인데 성질적으로 차이를 보자면, 결핍은 있다가 부족하게 된 것이고, 결여는 있어야 할 것이 빠져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구분이 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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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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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가 멸망한 이유? 알고싶어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발해 멸망의 원인은 3가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1. 다민족 국가로서 지배층 분열로 인한 내부 혼란2. 그 혼란을 틈타 거란의 침공에 대패하면서 국력 쇠락3. 백두산 화산폭발로 인한 피해로 국민의 이주 및 쇠퇴공식적인 기록에서는 다민족 국가로 지배층의 분열이 있었고, 그 기회에 거란이 침공함으로써 발해(대진국)이 멸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기록에는 그 멸망 이후에도 일본, 고려 등의 기록에 발해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완전 멸망한 것은 아니라 국력이 쇠퇴하여 국토가 협소해진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백두산 폭발이 원인이다는 설이 있는데, 그렇게 보는 이유도 거란 침공 이후 발해가 멸망했다고 한 시기 한참 지나서 발해의 왕자가 유민들을 이끌고 고려로 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것이 더 명확한 이유이다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거란의 침공에 의해 쇠퇴했다는 것이 맞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 이후 백두산 폭발 등으로 살기가 어려워져 최종적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확한 대진국 발해에 대한 기록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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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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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서도 위조화폐가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도 사사로이 만들어 쓴 사주, 관리들이 묵인해주면서 사용된 묵주라고 불리우던 엽전이 존재했습니다. 정상적인 엽전들은 동이 주원료인데 대부분 일본에서만 수입되었기에 그 발행량이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크게 문제될 정도로 위조화폐가 통용되었던 것은 아니고 정상적인 화폐도 대부분 실패한 상황이었지만, 동의 수입량이 많아져 대량주조가 가능해 진 시기에는 위조화폐범은 사형될 정도로 강력히 처벌하였습니다.그리고 근본적으로 화폐제조를 할 수 있는 화로 등을 제한한다던가 하였습니다. 그래도 대부분 위조화폐범들이 정부 관리들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어서 적발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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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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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터키와의 관계가 좋은 이유?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한민국과 튀르키에는 서로 형제국이라고 불리울만큼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관계는 아주 먼 옛날로 돌아갑니다. 과거 고구려와 돌궐이 형제국의 관계(사실은 서로 불가침하고 도움을 주는 화친의 관계)에 있었기에 고구려의 후예인 대한민국과 돌궐의 후예인 튀르키에가 형제국이라고 하게 된 것이라 합니다. 보통 튀르키에 국민들이 더욱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고, 이후 6.25 때 튀르키에가 연합군으로 전투군을 14,936명 파병하였고, 3,216명의 사상자 및 포로가 발생하는 희생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사실 실리적, 정치적으로는 튀르키에가 한국 파병을 결정한 이유는 당시 튀르키에가 NATO 가입하기 위한 로비를 진행하던 중이었고, 본 전쟁에 전투군을 파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NATO 가입 승인이 되었고, 미국과 NATO의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가 실질적인 이유이고, 어쨌든 터키의 국민들은 먼 나라의 전쟁에 참여하여 희생을 보여준 것이고, 그러한 역사적인 관계를 명분 삼은 부분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간에 우리 대한민국은 튀르키에에 대한 무한한 은혜를 평생 갚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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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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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때 언어는 지금이랑 많이 달랏다고 하던데 현재의 사람이 조선시대로 간다면 전혀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언어는 같았지만, 그 시대에 사용했던 사물의 명칭이나 단어들이 달라서 잘 못 알아들을 수 도 있다고 생각됩니다.제주도 방언을 대표적으로 봐도 제주도에서 쓰는 말이 너무도 달라 일반인들은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우리 말들에도 가위를 가세라고 한다던지 하는 옛고어의 흔적이 남은 방언들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언어가 같기 때문에 그 명칭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를 알게된 후에는 대화하고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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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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