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조선시대 음악을 가장 사랑한 왕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조는 즉위 초부터 조선의 악제가 불분명함을 알고 음률을 잘 아는 유생부터 찾았고, 정무를 보면서도 율려를 공부하고 집권 초반 악서의 편찬을 직접 주관해 조선 악학의 부흥에 힘썼으며 아악도서의 편찬을 통해 아악과 관련된 악정과 음악을 정비하고자했습니다.이것이 부족하다 생각해 국조시악을 편찬하고 시교와 악교를 통한 지악지신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학문 /
음악
23.04.26
0
0
현재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긍정적이지 않습니다.여론을 보면 대부분 성소수자에 대해 부정적이고 반대하는 입장이 더 많고, 나라의 입장에서도, 종교의 입장에서도 아직까지 관대하지는 않습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포퓰리즘(populism)이 뭔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포퓰리즘은 일반적으로 대중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 사상 및 활동을 말합니다.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대중을 지배하는 엘리트주의에 상대하는 개념입니다.
학문 /
문학
23.04.26
0
0
경주 첨성대는 언제 만들어졌으며, 역할과 용도는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첨성대는 별을 보는 용도인 천문대였습니다.신라의 제 27대 임금인 선덕 여왕 때 만들어졌습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양귀비가 도교에 들어간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양귀비가 도교에 귀의 한것은 현종과의 결혼때문으로 며느리였던 영귀비가 시아버지 현종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신분세탁이 필요했고, 이 방법으로 현종은 며느리였던 사실을 없애기 위해 양귀비를 도교에 귀의시키고 태진이라는 도교식 이름을 내리게 됩니다.
학문 /
철학
23.04.26
0
0
네오고딕 양식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네오고딕은 19세기 유럽 각지에서 나타난 고딕건축의 양식으로 이를 나안주의의 한 표징으로 본다면 18세기 이래 영국의 건축에서 기원을 찾으며 19세기 초 J.내시가 불규칙한 시골풍의 정서적인 디자인을 실현한 것은 그런 전통의 전개였고 1830년경 이 경향은 대체로 일정한 형태로 굳어지게 됩니다.
학문 /
미술
23.04.26
0
0
노가다 란 말은 일본어인가요 아니면 한국 말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노가다는 건축 및 토목 노동자를 의미하는 일본어 도카타가 어원입니다.즉, 일본어 입니다.
학문 /
음악
23.04.26
0
0
베토벤은 귀가 안들렸음에도 어떻게 작곡을 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소리를 잘 듣기 위해 보청기를 사용했지만 성능이 좋지 못해 도움이 되지 못했고, 입에 나무막대를 물고 피아노에 댄 채로 건반을 눌러 피아노가 내는 진동을 느끼며 작곡했습니다.
학문 /
음악
23.04.26
0
0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우리나라가 이긴게 맞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병인양요는 10월 13일에 완전히 조선에서 철수하며 조선과 프랑스 전쟁은 조선의 승리로 끝이납니다.신미양요의 경우 미군과 조선군의 질적 격차는 매우 컸지만 당장 파견한 전함 5척과 병력 1000여 명은 한 국가 전체와 싸우기에 부족했고 미국은 소모전을 이어가면서 조선에 진출할 필요가 없다 판단해 철수합니다.척화비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매 싸우지 않음은 곧 화친을 주장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우리 자손 만대에 훈계하노라, 병인년에 만들고 신미년에 세우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은 왜 일어난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국은 1066년 노르만왕조의 성립 이후 프랑스 내부에 영토를 소유해 양국 사이에는 오랜 분쟁이 있었으나 1328년 프랑스 카페왕조의 샤를 4세가 남자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그의 4촌 형제인 발루아가의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올랐는데 이에 대해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그의 모친이 카테왕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 양국간에 대립이 생기게 됩니다.영국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플랑드르에 수출해오던 양모 공급을 중단하고 그 보복으로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인 기옌, 지금의 가스코뉴 지방의 몰수를 선언, 1337년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6세에게 도전장을 띄우게 됩니다.원래 플랑드르는 프랑스왕의 종주권 아래 있었지만 중세를 통해 유럽 최대의 모직물 공업지대로서 번창, 원료인 양모의 최대 공금국인 영국이 이 지방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었고 기옌 역시 유럽 최대의 포도주 생산지였으므로 프랑스 왕들은 항상 이 두지방의 탈환을 바라고 있었으니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 두 지방의 쟁탈을 목표로 한것입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1351
1352
1353
1354
1355
1356
1357
1358
1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