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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문이나 한글을 쓸때...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문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약 4000년 정도 되었지만 종이가 발명된 것은 2000년도 되지 않습니다.이 전에는 딱딱한 거북이 등껍질이나 동물의 뼈에 문자를 썼습니다.그후 발명된것이 죽간이라 하여 대나무를 가늘게 잘라 사용했는데, 그러다보니 세로로 쓰는것이 편했고, 보통 오른손잡이가 많아 왼손으로 두루마리를 펴며 들을 쓰다 보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게 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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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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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도가 만들어진 원래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화랑은 꽃처럼 아름다운 남성으로 단체정신이 매우 강한 청소년 집단으로 교육적, 군사적, 사교단체적 기능을 가진신라때 청소년으로 조직된 수양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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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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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 환공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환공은 산융을 쳐서 연을 구하고, 노의 내란 평정에 힘을 기울이고 오랑캐의 침입으로 멸망한 형을 이의, 위를 초구로 옮겨 부흥시켰으며 군사력을 강화하고 상업, 수공업을 육성하여 나라는 튼튼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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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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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지을때 아무렇게나 지으면 안된다는데..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름은 정제성을 부여해주는 중요한 요소이기때문입니다.무언가 중대한 일을 할때 각오로써 자신의 이름을 건다는 식의 표현도 보이며, 사주팔자 등의 운세 따위도 중요하다 생각하여 이름을 지을 때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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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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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질문에 네.예 라고 대답하는것중 어떤것이 맞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답을 하거나 묻는 말에 긍정하여 대답할때 또는 윗사람이 부탁하거나 명령하는 말에 동의하여 대답할때 네, 예 모두 쓸수 있습니다.서로 동의어이므로 상관없이 사용가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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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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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도에 있는 국가지정문화재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사당인 경상남도 제승당이있습니다.또 전남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있는 충무사, 경남 거제시 팔랑포2길 87에 위치한 옥포대첩기념공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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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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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란 장르는 어떻게 시작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힙합은 1970년대 후반 뉴욕 브롱스 남쪽 빈민가에 거주하는 미국 흑인과 남미 히스패닉계 청소년들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문화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힙합이라는 말은 엉덩이를 흔들다에서 유래했고, Keef Cowboy라는 MC가 "Hip-Hop"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고 합니다.친구가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Keef Cowboy가 친구를 놀리며 그럼 훈련소에서 행군할때 Hip-Hop하면서 구령을 외치겠네? 라고 놀렸습니다. 군대식 발음과 엉덩이를 이용한 말장난입니다.그걸 본 친구들이 웃으니 그걸 무대에서 하기 시작했고 다른사람들이 그 소리를 응용하고 샘플링하면서 랩과 브레이킹 문화를 힙합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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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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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럽의 화장실은 배수구가 없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배수구를 만들면 한쪽 면을 경사지게 화장실을 설계해야 하는데 미관상 좋지 않으면 배수구를 통해 각종 벌레가 들어올수도 있어 굳이 배수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건식 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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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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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유래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도자기는 문명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굽던 토기가 그 기원으로 인간의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음식을 저장할 그릇이 필요했고 이 시기에 등장한 토기는 원시적인 노천소성 기법으로 구웠는데 굽는 온도가 600~800도밖에 안되어 토기에 물을 담으면 쉽게 풀어져버리므로 사용에 제약이있었습니다.선사시대의 빗살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토기 같은 간단한 형태를 거쳐 역사시대에 접어들어 가야토기, 신라토기 같이 정교하고 복잡한 형태로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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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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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항쟁은 어떠한 항쟁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231년부터 1259년 9차례에 걸친 몽골제국의 고려 침입으로 촉발된 전쟁으로 대몽항쟁, 항몽전쟁으로 불립니다.칭기즈칸의 주도하에 몽골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하며 유목민족의 기상을 높이고 서역을 정리하자 몽골제국은 중원으로 눈을 돌려 1차 목표로 그동안 자신들을 괴롭힌 금나라를 향합니다.몽골은 송나라와 연합하여 금을 남북으로 공격하니 금은 멸망하고, 이때 거란 잔당의 일부는 동요를 세우고 재기를 노렸으나 실패하고 다시 몽골에 쫓기게 되어 1216년 갈곳없어진 거란의 잔당들은 고려를 침략합니다.이에 몽골제국은 여진족의 동하와 동맹을 맺고 거란의 잔당들을 소탕하기 위해 고려에 들어왔고 고려도 거란 잔당 소탕을 위해 군사를 동원, 몽골 제국-동진 연합군과 협력하여 강동성에서 거란의 잔당들을 소탕합니다.몽골 제국은 이를 계기로 고려에 큰 은혜나 베푼듯이 행동하고 해마다 고려에 과중한 공물을 요구, 몽골 제국의 사신들은 고려에 들어와 난리를 부립니다. 때문에 고려에서는 반몽정서가 생깁니다.시간이 흘러 1225년 음력 1월 몽골 제국 사신 저구유가 귀국 중 국경에서 자객에게 피살당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몽골제국에서는 고려의 소행이라 주장하고, 고려는 국경을 넘어서 금나라 사람에게 피살된것이라 주장하며 양국 간의 관계는 험악해지고, 국교 단절에 이르며 몽골제국은 고려에 대한 침략을 계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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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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