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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대학교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정식인가를 받은 1호 대학교는 숭실대학교 입니다.1897년 미국 선교사 배위량 박사가 설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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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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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하면 캥거루를 떠올리는데 호주에만 캥거루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캥거루의 분포지역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태즈메이니아섬 및 그 주변의 여러 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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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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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의 사상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칼 마르크스는 프로이센 왕국 출신의 철학자로, 공산주의를 정립한 인물입니다.마르크스는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경향을 띤다는 헤겔의 관점을 가져오되 인간의 이성의 발전과 종착역을 설정한 헤겔의 관념론과는 다르게 인간의 노동에 따른 생산 양식의 발전과 이로 인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 사회로의 경향적 이행의 유물론을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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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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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놀이인 강강수월래의 유래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강강술래의 기원은 여러가지로 ,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순신이 만들었다는 설 입니다.적군에 비해 아군이 현저히 적자 이순신이 한 밤에 부녀자들을 모아 불을 들게 하고 해안가를 따라 돌며 강상수월래를 외치게 했는데 이를 본 왜군이 조선군이 아직도 많다고 착각해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이 설에 따르면 강강수월래의 의미는 강한 오랑캐가 물을 넘어 온다는 한자풀이에서 알수 있듯 오랑캐의 침입을 경계하는 병사들의 구호 입니다.그러나 민간에 이미 존재하던 강강술래가 임진왜란을 거치며 강강수월래라는 한문 어원을 갖게 되었다는 반문이 있으며 이에 따르면 술래는 본래 순찰이라는 의미의 순라가 변한 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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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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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최대 생산국가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오렌지 최대 생산국은 브라질 입니다.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오렌지 생산국으로 알려져있으며 브라질의 남동부 지역은 기후 조건과 토양 조건이 오렌지 생산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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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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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김밥이 만들어진유래가 어떻게 되는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충무김밥의 유래는 2가지로, 1945년 광복 이후 남편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느라 제 때 먹지못한 도시락 음식이 상해 결국 매번 굶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일을 하면서도 간편한 김밥을 만들어줬다는 것으로 과거 바다로 나가던 사람들이 끼니 해결용으로 대개 김밥을 싸 가지고 나았는데, 뱃일은 원래 하루 꼬박 잡아먹었고 밥 먹는 시간이 정확하지 않아 점심 시간을 한참 넘겨 먹는일이 잦았습니다.당시 고깃배에는 마땅한 냉장시설이 없어 김밥이 쉽게 상해버리는 문제가 있었고 이름모를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변가에서 김밥을 팔던 할머니가 이것에 대해 고민하다 김에 밥만 싸는 구성을 생각해 냈고, 그것만 먹으면 밍밍하니 거기에 잘 안상하는 반쯤 삭힌 꼴뚜기 무침과 무김치를 따로 싸서 팔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또 한가지는 통영은 해상 뱃길의 중심지로 통영여객선터미널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이들을 상대로 주전부리를 파는 행상들이 많았고, 따뜻한 남쪽 날씨로 인해 상하기 쉬운 김밥을 밥과 반찬을 분리해 팔았다는 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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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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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지역 감정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칸토는 관동지방의 도쿄, 킨키는 관서지방의 오사카로 본래 일본의 수도는 관서지방의 교토였는데 천년이상 수도 역할을 했으나 그것이 에도시대에 에도로 옮겨지면서 경쟁관계가 형성되었고 칸사이 사람들은 칸토 사람들을 무식한 시골뜨기라 칭하기도 했습니다.현재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그런 모습이 두드러지는데 도쿄 요리우리 자이언츠와 오사카 한신 타이거즈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야구 응원이 더 열성적이게 된다고 하며 이들은 스키야기와 우동을 가지고도 싸우는데 서로 만들어 먹는 방식의 차이를 두고 서로 싸웁니다.일본 내 지역감정으로 대표적이나 한국의 지역감정처럼 투닥거리는 정도의 라이벌 수준입니다.일본 막부 말 , 유신시대가 시작되려 할 즘 대부분의 번들은 사라지고 신시대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거나 묵인하는데 이 중에서 아이즈 현 후쿠시마는 막부장군을 지켜야 한다는 숙명을 짊어지고 유신세력과 보신전쟁을 치르며 끝까지 싸웁니다. 이로 아이즈는 보신전쟁에 있어 최후의 저항지로 유명한데 이날 이후 아이즈 사람들은 메이지 시대부터 출세길이막혀 , 아이즈 사람들은 신정부를 세우는데 특히 가장 주도적이었던 쵸슈번 현 야마구치 사람들에 대한 반발이 강했습니다.아이즈 사람들은 스스로 일본인이라고 하기 보다 아이즈인으로 불렸으며 1986년 보신전쟁 120주년을 기념해 야마구치의 한 도시와 자매결연을 하자 제의하나 아이즈는 보신전쟁의 원한을 잊지 않는다며 거절,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야마구치 출신 아베신조의 재임 당시 사과와 세대가 변화하면서 옛 악감정은 서서히 사라지는 듯 했으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면서 원한에 원한이 더해집니다.한편 산토리 전 사장은 이에 대해 지역비하 발언을 했는데 이후 토호쿠 사람들은 산토리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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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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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서당도 그림 속에 보여지는 조선 후기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서당도는 조선 후기의 민간생활을 묘사한 작품으로 서당에서 학생들이 훈장의 지도 아래 학문을 공부하는 모습으로 조선 후기 민간 교육과 학문의 중요성이 나타나지며 지식의 중심이자 경제적 활동의 중심이기도 했고 이를 통해 농업 사회의 교육과 경제활동이 어우러져있습니다.그림에 훈장, 학생들, 서당 운영을 돕는 사람이 그려져있는 것으로 보아 다양한 사회 신분을 나타내며 서당은 사회적 계층 간의 교류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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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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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갱유"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분서갱유는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파묻음 이라는 뜻으로 기우너전 213년과 기원전 212년에 일어난 별개의 두 사건을 하나로 합쳐 일컫는 것입니다.진시황 시대 분서갱유 , 즉 전국적인 사상 탄압의 단초가 되었다고 평가받는 사건은 기원전 213년 함양 연회에서 일어납니다. 이때 전국에서 부로 70여명을 초대해 연회를 벌이다가 참가자 중 한명인 주청신이 황제의 공덕과 군현제의 실행을 찬양하자 다른 참가자인 순우월이 옛 것을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주장, 이때 당시 자리에 있던 이사가 옛 사상과 제도에 매달려 있다면 통치에 해로울 것, 의약, 점술, 농업 등의 책을 제외한 제자백가의 책들과 시,서, 진을 제외한 국가들의 역사서를 불태울 것을 주장하며 이를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이것이 분서 사건 입니다.1년 뒤 후생과 노생 등이 실패로 끝난 진시황의 불로초 탐색을 놓고 불로초따위에 정신이 팔리다니, 이건 책 다 불태워서 고전 공부를 안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진시황을 비난,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전국의 불온 사상가 460여명이 함양에 매장, 이것이 후대에 갱유로 불리게 됩니다.갱유에 대해서는 사실이 분명치 않고 이설이 많아 후세 유학자가 꾸며낸 것, 실상이 과장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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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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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한문혼용체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쓰여진 문체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책적으로 한글 전용을 실시한 주체는 박정희 정부로, 박정희는 한글전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대학생들과 얘기를 나눈 뒤 한글전용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게 되며 그는 대학생들이 가져온 한글전용 계획을 살핀 뒤 1968년 5월 내각에 1973년을 목표로 한 한글전용 5개년 계획을 수립하라 지시합니다.이후 자신도 문서 작성과 명채 등을 모두 한글로 바꾸었고 10월 목표 연도를 1970년으로 3년 당기는 등 7개항의 강력한 한글전용 지시를 다시 내립니다. 거기에 한자 교육을 일시적으로 폐지하는데 엄청난 반발이 일어나 중, 고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재개, 한자 교육자체는 이미 축소된 뒤였습니다.그때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사회의 중역이 되기까지 대략 25년정도 걸리는데 그게 1990년대이며 동시에 사회 전반에 걸쳐 컴퓨터가 보급되고 전산화,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국한문혼용체가 줄어들게 되지만 그 흔적으로 1990년대까지 신문기사에서 사실상 한글전용 수준으로 한글이 보급되었으나 기사 하단에 명기되는 기자 이름은 여전히 한자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았고, 2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대학 교재나 주간지에서 국한문혼용을 드물게나마 접할수있었습니다.여전히 대기업, 대학 논문 등 에서는 자주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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