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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민사소송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앙의 민사재판기관으로서는 한성부, 의금부, 사헌부, 장례원이 있었습니다.한성부는 고려의 개성부제를 답습해 경기의 과전과 관내의 토지, 호구, 농상, 학교, 사송 등을 관장했고 형조,의금부와 함께 사법기능을 행사해 3법사의 하나로도 불렸습니다.장례원은 1467년 설립돼 노비의 부적과 소송에 관한 일을 관장했습니다.지방의 경우 관찰사, 목사, 부사, 군수, 현령, 현감 이 재판기관을 담당했습니다.이들 지방수령은 양반출신으로 갓 발령이 난 경우, 행정과 사법의 실제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습득하지 못한 때가 많아 실질적으로는 중인계급인 아전에 의해 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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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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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나 조선시대에서도 과학수사라는 것을 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도 나름의 과학수사는 있었습니다.유교적 윤리의식으로 부검은 하지 않았으나, 시신의 상태나 주변 정황을 꼼꼼히 살폈으며 얼굴색을 진한 붉음, 검붉음, 누렇게 붉음, 시퍼렇게 붉음, 창백하게 붉음, 연하게 붉음으로 나누어 기록, 만약 목이 졸려 죽은 자라면 정맥만 막히므로 피가 머리쪽으로 몰려 얼굴색이 검붉게 되는데 설령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타살임을 알수있었으니, 목을 매달았다면 정맥과 동맥이 모두 막혀 얼굴에 검붉은 울혈이 생기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습니다.또한 색에 의존한 검시방법을 이용해 범인들이 살해 흔적을 위장했는데 흉기로 구타해 살해한 뒤 푸르거나 붉은 색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범인들은 꼭두서니 풀을 식초에 담갔다가 상처에 발라 상흔을 제거했습니다.이에 조선의 법의학서적에는 상흔이 의심스러우면 사또는 반드시 감초즙으로 해당 부위를 닦도록 하라, 진짜 상처가 있었다면 즉시 나타날 것이다. 라고 기록했습니다.독극물 검사로는 유황이나 비소 등은 은과 반응해 검은 막을 형성하는데 이 원리를 이용해 은비녀를 죽은 자의 구강과 식도에 밀어 넣은 뒤 색이 변하는지 관찰, 독살인지 아닌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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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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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현대사의 5.4운동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19년 5월 4일 베이징에서 일어난 중국 민중의 반봉건,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한 중국의 요구가 무시되자 학생과 지식인을 중심으로 일본과 그와 결탁한 군벌에 대한 반대시위로 시작되었고 후 상인, 노동자도 합세함으로 전국적인 대중운동으로 발전해 중국 근대화를 추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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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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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는 어떤 이유로 선동의 제왕이라고 불리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가 사용한 선전, 선동 방식으로 전후 세계의 정치와 언론에 큰 영향을 주어 선전, 선동의 제왕으로 불립니다.나치당이 정권을 잡기 전 당에 입당해 히틀러를 추종하고 나치즘을 신봉, 이를 시기하는 주변인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정치 깡패 나치당 돌격대를 조직, 그의 탁월한 연설능력으로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해 미미했던 나치당의 당원수를 늘려나갑니다. 이를 눈여겨본 히틀러가 나치당에 재기하면서 괴벨스에게 공격 이라는 당 신문의 편집장을 맡기면서 힘을 실어줍니다.여기서부터 나치즘의 신봉자, 히틀러의 광적인 신도가 되는데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조장하는 글과 집회를 하며 괴벨스만이 가진 나치즘을 완성시키며 이 때문에 유대인으로부터 수많은 고소와 고발을 당하는데 덕분에 그의 인지도가 쌓이고 1928년 총선거에서 국회의원 당선으로 모든 고소 , 고발건에 대해 면책특권을 갖게 됩니다.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한 1933년 괴벨스는 국민계몽선전부장관, 문화회의소 총재로서 문화예술전반을 완전히 통제하는데 언론사 통합, 라디오, 영화, 연극, 미술, 음악을 통제하기 시작하며 국민을 전쟁에 동원, 1933년 5월 자신의 나치즘에 반대하는 책과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수 많은 책을 태웁니다.후 본격적으로 유태인 탄압을 시작하는데 홀로코스트 사건의 주범 중 한명이 괴벨스 이며, 2차 세계대전시 전쟁범죄를 미화시키고 독일 국민들을 선동해 분노와 증오를 일으키는데 앞장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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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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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 임꺽정은 왜 요즘 사람들에게는 의적으로 알려져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임꺽정은 일제강점기 당시 소설로 인해 의적으로 알려져있으며 드라마, 영화에서도 의적으로 미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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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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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문화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가 처음 나라를 세운 곳은 압록강 유역으로 높고 험한 산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주로 사냥을 하거나 약탈 경제를 추구할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주로 강인하고 힘찬 특징을 가집니다.또 외형적인 성장 뿐 아니라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고구려 고유 문화로 재창조하거나 이를 백제, 신라에 그리고 일본에 전해준 문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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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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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교토는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피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 전쟁부 장관이었던 헨리 스팀슨의 반대 때문으로 스팀슨 장관은 젊은 날 신혼여행 때 방문한 교토의 아름다움과 찬란한 문화재를 잊을 수 없었고 스팀슨 장관의 주장에 따라 교코를 B-29 폭격대상은 물론 원자폭탄 투하 후보지에서 빠질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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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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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왜 사후에 인정받기 시작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요한나는 고흐의 그림을 알리기 위해 고흐가 남긴 편지를 정리해 책으로 출간, 663통의 편지 대부분 날짜가 없어 요한나는 엄청난 시간을 들여 당시 일을 떠올리고 상황을 짐작하며 순서를 정리합니다. 1914년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네덜란드어와 독일어로 출간, 이 책은 고흐의 명성이 올라가는데 기여합니다. 요한나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 영문판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손수 번역하다 526편의 번역을 끝으로 생을 마감, 요한나의 예상 대로 이 책의 영문판이 출간 된 후 고흐의 명성이 더 높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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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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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책내용을 까먹지 않고 오래기억 할 수 있는 방법없을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메모인데,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정확한 자신만의 법칙이 있어야 가능합니다.메모 하기 전 카테고리 별로 나누는 작업을 하고, 주제별로 메모를 하되, 내용을 분류하고 그곳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기록후 그 내용에서 본인이 느꼈던 것을 다시 한번 적어내려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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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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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과 같은 공양 행위는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전기 신숙주가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오는 뱃길에서 풍랑을 만나자 뱃사람들이 해신의 분노를 잠재워야 한다며 어린 여자를 바다에 산제물로 바치려했는데 신숙주가 그걸 못하게 막았다고 쓴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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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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