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일본의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알고싶어요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일본은 조몬, 야요이 시대를 거쳐 3세기 중후반부터 7세기경까지는 고훈시대로 접어듭니다.이시기에는 중국과 한반도로부터 선진 문물과 도래인들이 지배층을 형성하였습니다.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과 맞물려 더욱 잦아졌고 도래인의 대표적인 소가씨와 천황가의 싸움이 벌어져 천황가가 승리하고 덴지 천황은 다이카개신을 발표합니다. 이후 불교를 받아들이고 율령을 발표하는 등 일본의 독자적인 발전이 두드러집니다.이후 나라시대와 헤이안 시대를 거쳐서 쇼군이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는 막부체제가 등장하게 됩니다. 헤이안시대 후반, 지방에서는 호족과 부농들이 자신들이 개간한 농지를 사유화하고 이를 지키려고 스스로 무장했는데 이것이 무사계층이 되었고 곧 각 지역에서 세를 과시하며 다이묘라고 불렸습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여전히 천황을 주군으로 모셨습니다.무로막치 막부시대 말기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응인의 난이 벌어지고 이 기회를 틈타 다이묘들은 그동안 축적해왔던 군사력을 가지고 저마다 세력을 넓히기 위해 군사를 일으킵니다. 이로 인해 일본은 전국시대로 접어들어가고 백여년동안 내전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가장 먼저 천하통일에 가까워진 것은 오다 노부나가였으나 그는 혼노지라는 절에서 수하 아케치에게 암살당하게 되고 다른 수하인 히데요시가 다른 세력들을 제압하고 천하통일을 이루게 됩니다.히데요시는 수백년 전란동안 성장한 무사계급을 전란이 끝나자 해산시킬 수 없어 이 넘치는 힘을 대외원정으로 해소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조선,명 정벌군을 일으키게 됩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두번의 전쟁은 히데요시의 죽음과 함께 일본의 패배로 끝나게 되고 일본은 다시 내전이 벌어집니다. 히데요시의 세력아래 숨죽이고 있던 이에야스가 결국 승기를 잡고 도쿠가와 막부를 열게 됩니다.도쿠가와 막부는 전쟁을 벌였던 조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후 수백년동안 이어졌습니다.
Q.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가 임진왜란 당시 원군 파견을 제의한 적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조선왕조실록의 선조실록을 보면 누르하치가 조상의 나라인 조선에 원군을 파견하겠다는 내용이 나옵니다.여진,숙신, 말갈, 읍루등의 부족들은 고조선, 고구려, 동예, 부여등의 한민족 국가와도 연관이 깊었기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발언입니다. 조선의 건국자인 이성계또한 북방민족들을 이끌면서 성장한 무장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의형제인 이지란은 여진족이기도 했습니다.사실 누르하치는 그 당시 세력을 계속 키워나가는 신흥세력이었고 국제무대에 자신의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원병 제안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훈련으로 강성해진 군사력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것이고 타국에 병력을 파견하면 이후에는 치안유지등을 핑계로 군대를 계속 주둔시킬 수도 있고 군사적 정치력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누르하치는 용의주도한 인물이기 때문에 단순히 우리는 같은 뿌리를 가졌다는 역사의식에서 원군을 파병해주겠다고 할리가 없음을 조선 조정또한 잘 알고 있어서 이를 거절했다고 봅니다.또한 오랑캐라고 인식하고 있던 여진족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유교적 인식도 있었을 것입니다.
Q. 러시아가 발해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발해 역사를 둘러싼 한,중,러의 시각은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과 실리에 입각하여 펼쳐지고 있습니다.이것은 발해영토가 현재 중국, 러시아의 영토에 걸쳐서 존재하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중국같은 경우에는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임을 주장하며 현재 중국 영토임이 역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습니다.러시아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인종, 문자가 러시아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보니발해는 자주독립국가였으나 고구려인이 아닌 말갈부족에 의해 세워진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은 물론 중국의 역사나 민족과는 별개였다는 것을 주장하여 현재는 사라진 말갈부족으로 인해 누구의 역사적 점유를 주장할 수 없다고 믿고 싶은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