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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을 공유하고 모르는 것을 함께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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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전문가
맑은글터동인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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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 조선시대에 성리학자가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 말기 중국 명의 성리학을 공부했던 문신들과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무신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무신들이 왕권을 위협하고, 비리가 많아 성리학자들 중 정도전을 중심으로 세상을 뒤엎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신들만으로는 무신들이 권력의 중심이던 고려를 뒤엎을 수는 없었죠. 그래서 실력은 있으나 기득권에 위협이 될까봐 변방에 쫒겨나 있어 불만이 있었던 이성계를 이용하여 역성혁명을 도모하게 됩니다. 당시 새로운 세상의 조건은 힘이 아니라 성리학의 기반에 세워지는 나라였습니다. 이성계도 그것에 동의했고 그래야만 나중에도 고려처럼 무신들이 서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일이 없고 왕권도 강화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조선을 건국하고 이성계가 왕이 되는 과정에 함께 했던 정도전은 죽임을 당하게 되었지만, 그 뜻을 이어가 조선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였고 그 학자들이 정치의 선봉에서 나라를 이끌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성리학자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거시험도 모두 성리학에서 출제되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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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말했는데..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의 철학 제 1 성찰의 명제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입니다.이것은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노의 인식론과 존재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말로 그가 원조 문제제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모든 문제에 대해 의심할 수 있고, 모든 것이 허위라고 생각할 수 있어도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는 자기확실성을 표현한 말입니다. 이것은 보기에는 생각하는 모든 것은 존재한다는 대전제가 생략된 3단 논법처럼 인지될 수 있으나, 데카르트가 제기한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나는 생각한다.'라는 말에 직관적으로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의 주체가 있는 것이므로, 그 생각의 주체는 당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명제인 것입니다. 첫번째 성찰 이후 제 2 성찰에서 '그래도 나는 존재한다', '생각한다는 것이 반드시 이성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생각하지 않은 때 내가 존재하는 지 불확실하다.',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의심불가능한 나가 실제의 나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제기되어 제 3 성찰에서는 이 4가지 관념이 있다는 논제가 제시됨으로써 이라는 유명한 골칫거리를 탄생하게 합니다.이후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샤르트르, 키에르케고르, 러셀 등 많은 철학자들의 비판과 반박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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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왜 자기 나라 역사라고 우기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은 모든 문명과 문화의 시작이 중국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들을 뛰어넘는 것에 대해 경계가 심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역사서에도 자신들과 대등한 국력을 가지고 경쟁했던 나라들에 대해 오랑케 취급을 하며 저평가하여 기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중국의 중심부와 요동, 요서 지방 등에서 많은 고구려, 대진국(발해)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고, 그것은 사실 당시 고구려와 고구려 멸망 후 그 정통성을 이어 건국된 대진국 (발해)이 중국 대륙 깊숙하게 세력을 펼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대로 발굴도 발표도 안하고 있죠. 이에 이러한 위대한 대한민국의 고대국가들의 위용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역사가 자기네 역사여야 하는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서 한복, 김치, 그리고 문화 한류 등 대한민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널리 퍼지게 되자 대한민국 한민족의 문화인 한복은 그들을 한푸라며 원래 중국의 것이었다고 우기고, 김치 또한 자신들의 파오차이 (단순 야채절임)에서 기원한다고 어이없이 우기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손흥민도 중국인이라는 둥 ㅋㅋ,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발전하게 된 것은 다 중국의 덕인데 자신들에게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둥 헛소리를 국제사회에서 하는 영상도 유튜브 등에 많이 돌아다니죠. 이처럼 중국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이유는 자신들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남의 것을 원래 자기의 것이라고 우겨, 스스로 위안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봅니다. 중국의 넓은 대륙에는 정말 많은 민족들이 구성되어있습니다. 거기에 조선족자치구에 우리와 같은 말을 쓰는 조선족이 있죠. 그렇다고 해서 그 조선족이 대한민국이거나 대한민국 국민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이지 중국의 역사가 아니죠. 전 세계에 영어를 쓰는 국가들이 정말 많은데 그렇다고 해서 모두 영국의 역사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죠. 중국이 우리의 고대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하는 순간, 중국은 이미 우리 대한민국에게 패배한 것이고, 우리 대한민국의 문화가 부럽고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더 큰 소리로 그 부러움을 내비치어 우리 대한민국 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줬으면 좋겠네요.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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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절에 풍경을 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절에 풍경을 다는 이유는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풍경이 수행하는 사람들이 빠져들 수 있는 나태함과 매너리즘을 경계하고 깨우치게 하기 위함입니다. 풍경의 방울에는 물고기 모양의 얇은 금속판이 달려 있는데 물고기는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것처럼 수행자는 잠을 줄이고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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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어단어 봉급(salary)라는 단어의 유래가 소금과 연관되어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salary라는 말은 라틴어 salarium(소금을 지급한다의 뜻)에서 나온 말이고 더 들어가서 보면 앵글로 프렌치 방언인 sararie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sararie의 뜻도 임금, 보상으로 현재 salary의 뜻과 동일하고 그 근원도 라틴어인 salarium이라고 합니다.salarium은 소금, 염전이라는 뜻이었는데 로마시대에 소금이 귀하여 화폐로 사용되었고, 로마 군병들에게 윌급으로 salarium을 지급하였다고 합니다.그래서 지금의 영어인 salary가 봉급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고, 여기에 일본에서 salary에 man을 붙여 봉급생활자라는 의미로 사용하여 우리에게도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정식영어로는 salaried worker나 employee가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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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무슨말일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미타'라는 부처와 '관세음'이라는 보살은 인간을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한 이라고 합니다. '아미타' 부처의 상이 '아미타불'이고, '관세음' 보살의 상이 '관세음보살'입니다. 이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한다는 뜻입니다.불교에서 말하기를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진심으로 믿으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승려들이나 불교인들이 습관적인 것처럼 되새기듯 말한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아멘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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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성계는 권력에 큰 욕심이 없었던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권력의 욕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명분을 찾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에는 권력을 잡을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나, 원래 북방을 지키는 최고의 장수로 이름났었고, 거의 그 지역에서는 왕처럼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고려말기로 각 호족세력들의 경우 가병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는데, 이성계의 집안은 그 가별초라고 가장 유명하고 강한 사병을 육성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정도전이 최영과 당시 군부세력과 견제하고 역성혁명을 하기 위해 이성계를 포섭하였고, 그러던 중 이성계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용이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음을 깨닫고, 주위의 강력한 권유도 있어 권력에 대한 야망은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권력의 야망을 보이지는 않았고, 그 명분을 찾다가 최영을 중심으로 한 북방 정벌에 선봉장으로 나서게 되었으나 애초에 여러가지 이유로 전쟁을 반대하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많은 비와 물난리로 더이상 진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이를 명분으로 군사를 돌렸고, 이에 어명을 어긴 것이 되어 자신과 동참한 모두가 최영에게 죽임을 당할 것임이 뻔하므로 되려 공격하고 역성혁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혁명 후에도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새로 옹립하여 이성계 스스로 왕위에 오르지 않았으나, 나중에 정몽주가 죽고 난 후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고려라는 국호를 내리고, 새로이 조선을 건국하게 됩니다. 전반적인 흐름으로 볼 때 이성계가 하늘과 백성의 뜻을 받들어 어쩔 수 없이 왕으로 선택된 것처럼 하기 위해 애초에 권력에 욕심이 없는 군인으로 묘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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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독교 나 종교에서 면죄부를 주는 것이 돈을 받고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맞습니다. 구원을 판매한 것이죠. 지금보다 훨씬 신실했던 중세 카톨릭신자들은 사후에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구원받는 것에 대해 열망이 대단했습니다. 이러한 죄사함에 대한 열망과 두려움을 가진 신도들을 대상으로 로마카톨릭교회가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판매하였습니다.당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사였던 루터가 이것은 회개없는 용서이자 거짓평안이라 비판하며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역설하며, 성서 중심의 종교개혁을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교황 10세 레오가 모든 주장을 철회하고 물러서라 했지만 성경의 권위를 앞세워 성서에 어긋나는 가르침은 거부하였습니다. 당시 로마카톨릭교회는 믿음은 없고 인간의 탐욕만 가득찼었던거죠. 이러한 움직임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 종교개혁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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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에 좌식문화로 바뀐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좌식문화의 발달은 온돌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온돌 형태는 평평한 바닥에 하단을 더 올려 군대 내무반 형태로 단이 있는 북방형 온돌과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는 평평한 방바닥으로만 온돌을 만드는 남방형 온돌의 형태가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황실과 귀족들, 일반 백성 일부가 입식문화였고, 백성들 대부분은 좌식문화(남방형 온돌생활)를 하였다고 합니다.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초기까지는 고려와 비슷하였으나 그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부분 좌식문화로 바뀌었다고 합니다.그러고 보면 고려시대까지는 중국 주거문화와 비슷하여 주택이 단층이 아니라 2~3층의 복층 한옥도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과거부터 남아있었던 것은 있었으나 새롭게 건축된 것으로는 정자와 같이 필로티 형태가 아니면 복층이 거의 없었다고 보입니다. 이유는 아궁이를 이용하여 바닥에 만드는 온돌의 경우 2층에 설치하기란 목조건물 위주였던 당시로는 어려웠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그래서 보통 고려시대까지도 활발했던 2층 이상 구조의 건물의 경우 12층은 생활을 하고 2층 이상은 서고나 창고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생활문화 외 추가적으로 정치적인 이유를 추론해보자면, 조선은 과거 고려의 문화가 온갖 사치하고 비유교적이며, 부패하여 이를 배척하고 새로운 성리학이 기반이 된 국가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고려시대의 입식보다는 정숙한 유교적인 생활을 권장했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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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625전쟁을 북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 논란은 북힌이 남한을 침략했느냐, 남한이 북한을 침략했느냐의 논란이 아니라 국어학적인 해석과 표현의 오류로 판단됩니다. 즉 질문 주신 것과 같이 625전쟁이 '북침'이냐 '남침'이냐의 판단인 것이죠. 현재 전세계적으로 625전쟁은 공산주의 적화통일을 위해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남한을 침략하여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이념 갈등으로 인해 38선 부근에서 북한과 남한의 잦은 다툼이 있기는 했지만, 전쟁으로까지 끌고간 것은 북한의 남한 침략임은 명확합니다. 하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내용과 사전적 의미가 달라 간혹 혼돈이 생기곤 합니다. 일반적인 표현상 해석으로 이렇게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을 경우 : '북한의 남한 침략, 북한의(에 의한) 침략'이므로 '북침'이라고 이해합니다.- 남한이 북한을 침략했을 경우 " '남한의 북한 침략, 남한의(에 의한) 침략'이므로 '남침'이라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게 표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표준국어대사전과 국립국어원에서는 다음과 같이 사전적 의미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 남쪽에서 북쪽으로 침략함을 '북침'이라고 합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침략함을 '남침'이라고 합니다.따라서 625전쟁의 경우 '남침'이 맞는 표현이고,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북한의 남침'이라는 것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보통 언어적 표현과 사전적 표현이 같은 의미인데도 다르게 이해되어 반대의 말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할 때는 주어, 목적어, 소유격 등을 자세히 표현해주어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예를 들면, 방향으로만 표현하여 행동주체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적어 행태로 표현하게 되면행동 주체인 주어인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것이니 '남침'이다 라고 하는 것이 편하고 명학하지 않을까 판단됩니다. 결론적으로 남침, 북침의 남과 북은 행동의 주체를 표기한 것이 아니라 목적어, 즉 행동의 대상을 표기한 것이므로, 625전쟁에 대한 표현을 할 때에는 '남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습니다. (남한이 북한을 침략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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