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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을 공유하고 모르는 것을 함께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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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전문가
맑은글터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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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나라 역사는 고구려부터 아닌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단순히 공인된 역사적 자료가 없다고 해서 우리의 역사를 축소해서는 안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는 그 이전 부족국가의 형태를 탈피하고 발전하였기에 그 의의가 더할 수는 있으나 국가의 기원은 아닙니다. 고구려의 경우 그 이전의 부여국에서 독립되어 나왔고, 그 부여국 또한 해모수왕이 세운 부족국가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유사 및 삼국사기에도 부여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은 중국 측 자료에도 나옵니다. 그 이전의 고대국가로 단군이 다스렸다는 고조선이 있습니다. 원래의 명칭은 조선이나 가장 마지막 왕조인 이씨 조선왕조와 구분하기 위해 오랜 조선이라고 하여 고조선이라고 구분하는 것이라 합니다. 기원전 2333년 단군조선을 시작으로 하여 최종 기원전 108년까지 실존했던 국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중국의 사서인 사기, 정사 삼국지, 한서, 후한서에 단편적으로나마 조선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미약한 자료이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고구려부터로 한정 짓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BC37년에 시작되었고, 신라는 BC57년에 시작되어 신라가 20년 정도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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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터키의 국명을 '튀르키예'로 바꾼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터키가 영어로 칠면조를 뜻합니다.칠면조는 속어로 겁쟁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구어체로는 실패를 나타내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호전적이고 용맹하여 물러서지 않는 민족성에 반한다고 판단하여 최종적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하고 UN에서도 최종적으로 승인, 동의했다고 합니다. 바뀐 국호인 튀르키예의 튀르크라는 뜻은 용감하다 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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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는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한민국 국적으로의 최초의 금메달 리스트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에서의 양정모 선수입니다. 당시에는 레슬링에서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 토너먼트 식이 아닌 벌점 합계 채점제라는 특이한 방식이었습니다. 1976년 7월 31일 캐나다 몬트리올 모리스리처드 경기장. 금메달 결정전에 양정모 선수가 결선리그에 올라서, 한국 양정모, 몽골 오이도프, 미국 진 데이비스가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양정모는 진 데이비스를 폴승으로 제압했고, 오이도프는 진 데이비스에게 판정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이도프는 양정모의 최대 라이벌이었습니다. 아주 강한 상대였다고 합니다.양정모는 오이도프에게 맞대결에서 패했지만 당시 채점은 기술을 당한 선수에게 벌점을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두 어깨가 바닥에 닿는 폴패(敗)는 4점, 판정패는 3점이었다. 양정모는 오이도프에게 지더라도, 폴패만 하지 않으면 우승이 확정돼 있었던 것이었습니다.종료 휘슬이 울리고 심판은 오이도프의 팔을 번쩍 들었습니다. 하지만 경기의 승자인 오이도프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경기에서 패배한 양정모는 너무나도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는 양정모가 오이도프와의 맞대결에서는 패배하였으나, 폴패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승리그 벌점 합계 3점으로 오이도프보다 1점이 적었기 때문에 금메달 주인공은 양정모였던 것이었습니다.그 이후에도 우리 나라는 심권호와 같은 그랜드마스터를 배출할만큼의 레슬링 강국이 되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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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과거 샴푸가 없었을 시절 어떻게 머리세척을 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 나라를 예로 들어본다면, 과거에는 지금보다는 자주 머리를 감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감더라도 그냥 물로만 감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창포를 달인 물로 버리를 감아 기름기를 없애고 머리결도 관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콩, 팥, 녹두, 쌀뜨물 같은 경우에도 세정력이 있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무 태워 숯을 만든 후 그 재를 이용해서도 잿물을 만들어서 머리 감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현재도 목초액이라고 하여 무좀, 아토피피부염 등에 좋다고 하여 약재로 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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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국에는 왜 아직도 여왕이 존재하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입헌군주제를 하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왕이 있는 국가는 영국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 내용은 나무위키에 [입원군주제]의 내용에서 을 차용하였기에 실제와는 다를 수 있으나 영국 외에도 많은 국가에 왕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답변을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왕국(Kingdom)네덜란드- 빌럼알렉산더르 (Willem-Alexander, 1967년생, 재위 2013~)노르웨이 - 하랄 5세 (Harald V, 1937년생, 재위 1991~)덴마크 - 마르그레테 2세 (Margrethe II, 1940년생, 재위 1972~)모로코 - 무함마드 6세 (Mohammed Ⅵ, 1963년생, 재위 1999~)바레인 -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Hamad bin Isa Al Khalifa, 1950년생, 재위 1999~)벨기에 - 필리프 (Philippe, 1960년생, 재위 2013~)부탄 -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 1980년생, 재위 2006~)스웨덴 - 칼 16세 구스타프 (Carl XVI Gustaf, 1946년생, 재위 1973~)스페인 - 펠리페 6세 (Felipe VI, 1968년생, 재위 2014~)영국 - 찰스 3세 (Charles III, 1948년생, 재위 2022~)요르단 - 압둘라 2세 (Abdullah II, 1962년생, 재위 1999~)캄보디아 - 노로돔 시아모니 (នរោត្តម សីហមុនី, 1953년생, 재위 2004~)태국 - 마하 와치랄롱꼰 (มหาวชิราลงกรณ/Maha Vajiralongkorn, 라마 10세라고도 함, 1952년생, 재위 2016~)통가 - 투포우 6세 (Tupou VI, 1959년생, 재위 2012~)레소토 - 레치에 3세. 전제군주정이었으나 1993년부터 입헌군주정으로 전환공국/대공국(Principality/Grand Duchy)리히텐슈타인 - 한스 아담 2세 (Hans-Adam II, 1945년생, 재위 1989~)룩셈부르크 - 앙리 (Henri, 1955년생, 재위 2000~)모나코 - 알베르 2세 (Albert II, 1958년생, 재위 2005~)안도라 - 조안엔리크 비베스 이 시실리아 (Joan-Enric Vives i Sicília, 1949년생, 재위 2003~), 에마뉘엘 마크롱 (Emmanuel Jean-Michel Frédéric Macron, 1977년생, 재위 2017~): 두 명의 대공이 공동 통치하는 나라로, 대공은 스페인 우르헬교구장 주교, 그리고 프랑스 대통령이 자동적으로 겸직아미르국(Emirate)카타르 -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Tamim bin Hamad Al Thani, 1980년생, 재위 2013~)쿠웨이트 - 나와프 알아흐마드 알자비르 알사바흐 (Nawaf Al-Ahmad Al-Jaber Al-Sabah, 1937년생, 재위 2020~)기타영연방 왕국 - 찰스 3세 (Charles III, 1948년생, 재위 2022~): 영연방 왕국의 군주는 영국 국왕과 동일 인물. 그러나 국명으로 '왕국'을 사용하지는 않음. 예를 들어 캐나다의 국명은 그냥 캐나다, 호주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임. 또한 모든 영연방 국가들이 영국 왕을 군주로 하는 것은 아님. 등은 영연방 국가이긴 하지만 자국에 엄연히 대통령 및 총리가 있는 공화국말레이시아 - 파항의 압둘라 (Abdullah Sultan, 1959년생, 재위 2019~): 군주의 칭호는 양 디페르투안 아공(Yang di-Pertuan Agong), 국명은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각 주의 지방 국왕[4]들이 5년의 임기를 두고 돌아가면서 연방 왕위에 오르는 독특한 시스템. 따라서 장수하면 젊을 때 한 번, 나이들어서 또 한 번 해서 두 번 즉위하는 경우도 일본 - 나루히토 (徳仁, 1960년생, 재위 2019~): 국명은 일본국. 군주의 칭호는 천황이다. 군주 재위시기에 따른 연호가 있고, 황제의 격식을 따르며, 제국의 국호를 쓴 적도 있으나 패망 후 GHQ가 전제군주제의 요소를 모두 삭제하고 천황의 형식적 권한까지 완전히 박탈하면서 국호가 '일본국', 영문으로도 그냥 Japan이 되어 국체를 나타내는 표현(kingdom, empire, republic 등) 자체를 아예 붙이고 있지 않음.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황제(Emperor)로 불리는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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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챗GPT 논문도 인정 받을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어떤 논문을 챗GPT가 작성하였다면, 어떤 문제에 대한 AI의 의견으로 Publish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운용한 사람을 저자로 하여 논문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이 문제가 대두되자 국내 어떤 학교에서는 챗GPT로 작성하여 제출한 과제에 대해서 모두 0점 처리를 하는 등 견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체 논문을 챗GPT로 썼다면 한 개인의 논문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 같고, 논문 내용에 있어서 일부 data를 수집하는 것에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면, 출처 및 Reference를 밝힌다면 지금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제는 어떻게 챗GPT로 썼는지를 검증하는 부분인데, AI가 작성을 했다면, 반대로 AI가 어떻게 작성되었는지도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챗GPT는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획기적인 기술이지만, 이렇게 사람이 생각해야 하는 부분까지 대신 생각하고, 더욱 진화해서 사람들이 더이상 생각할 일이 많이 없어진다면, 인류가 더 퇴보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듭니다. 이러한 좋은 기술이 위협이 되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사람의 영역까지는 침범할 수 없도록 설계 당시 규제하는 법도 필요하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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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대 왕들의 무덤이 거의다 웅장한 이유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대 왕들의 경우 신 바로 아래 계급으로 신의 임무를 부여받은 최고의 권력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크고 높은 곳에 궁궐을 지어 살아있을 때 그 권위를 떨치게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아무리 권력과 재산이 많은 권문세가라 할 지라도 최대 99칸까지만 방을 만들 수 있고, 그 이상을 초과하면 왕의 권위를 도전하는 것으로 역적에 해당하게 됩니다. 이에 왕의 죽고 나면 그 무덤을 일반인보다 크게 짓고, 주변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왕의 무덤임을 외형으로도 알리고 그 위대함을 사후에도 인지시키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당대의 왕 뿐만아니라 그 왕조를 유지하게 하기 위한 수단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들의 무덤도 그 크기가 다 같진 않습니다. 그 왕들 간에도 업적이 크고 위대하다고 평가되던 왕일수록 그 무덤이 다른 왕들에 비해서도 큰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진시황제의 무덤이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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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후기 성리학을 비판한 실학이 뭔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실학이란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이라는 뜻입니다. 조선 시대 건국부터 나라의 근간이 되어왔던 유학 즉 성리학의 전통에서 공리공론에 기초한 헛된 학문이라는 뜻의 허학과 대립된 말로 폭넓게 쓰여 왔다고 합니다. 중국 송나라 때 실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노장사상과 불교를 필요가 없는 학문이라고 비판하며 중용의 가르침을 실학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명나라 때의 나흠순과 왕정상은 송·명 시대 이학을 비판하며 실사구시라는 뜻의 실학의 개념을 세웠습니다. 일본에서는 실학이 에도시대에 서구의 과학·기술의 수용을 강조하고 비실용적인 성리학을 비판하며 나타난 새로운 학문 경향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고 합니다.따라서 조선시대의 실학은 조선 후기 사회에서 나타났던 사상으로 성리학의 관념성과 경직성을 비판하며 실사구시의 태도를 강조했던 학문이므로 실생활에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비판한 새로운 흐름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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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나라에서 가장 제작비가 많이들어간 영화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영화 중에서 가장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영화는 2007년 심형래 감독의 입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CG 비용 등으로 인해 총 제작비용 약 700억원이 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손익분기점이 1,000만 명 이상(1,500만명이라는 자료도 있다고 함) 되었었으나, 실 관객수는 840만명 정도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여 망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발전된 CG, 미국 시장 진출, 국내 애국심을 자극하는 마케팅 등으로 어느 정도 시장에서 관심은 받았었으나, 지나친 애국 마케팅과 배우들의 수준 떨어지는 연기력, 이야기 전개 미약 등으로 국내외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으며, 최악의 평점을 받았습니다. 결국 미국 시장에서의 실패로 큰 적자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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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주 옛날에 고래를 어떻게 잡았을까요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과거에는 작은 배를 타고 나가 작살을 죽을 때까지 던저 잡는 완전 수동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고래가 연안에서 없어지자 큰 배를 타고 나가 고래를 발견하면 다시 작은 배를 내려 타고 동일한 방식으로 하여 정말 목숨을 걸고 하는 포경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흔히 모비딕 소설에 나오는 미국식 포경이었습니다. 19세기에 노르웨이식 포경 방법은 작살에 폭약을 달아 한번에 사살하고 죽으면 가라앉기 때문에 큰 고래를 잡을 수 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사체에 공기를 주입시키는 방법이 개발되어 흰수염고래 같은 대형 고래도 잡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식 포경이 발전하여 모선식 포경이 성행했는데 이는 고래를 가공하는 대형 모선과 포획을 담당하는 포경정, 보급선, 기름을 저장하는 유조선 등이 Team으로 움직이고 고래 탐색을 위해 헬리콥터를 탑재해서 다니기도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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