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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현행 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전문가입니다.

이현행 전문가
운흥초등학교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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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있어서 체벌을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성세대들에게는 놀라운 일들이 학교와 교실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계의 현실입니다. 기성세대들은 체벌이나 훈육의 강도가 굉장히 강했고 학교공간이나 선생님들이 공포의 대상인 경우가 많았지요.그러나 교육적으로 체벌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체벌을 부활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체벌이 효과가 없으니 도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교권은 다른 방법으로 찾아야하겠습니다. 선생님들의 권위가 많이 떨어졌지요. 옛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못하면 학교에서 굉장히 공손하고 선생님들에게 깍듯하게 했지요. 요즈음 학부모님들은 선생님이 작은 것 하나 잘못산 것은 아닌지 집중하고 아이가 잘못했어도 그것을 크게 나무라지 않고 학교에서도 당당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우리 사회와 학부모들이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데 아이들에겐 교사를 믿고 따르라고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민주적인 사회에서 민주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21세기 교실에서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이를 어찌 교육하고 훈육하느냐는 우리 교육의 핵심과제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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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프로이드가 말한 자아, 초자아, 원초아는 어떤차이점이 있는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지아, 초자아, 원초아 즉 이드는 프로이드 정신분석의 핵심개념입니다. 자아는 에고라고 불리는데 우리의 의식세계로 보시면 됩니다. 이드는 무의식세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각종 억압된 충동, 욕망의 빙하덩어리의 바다 깊숙한 부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의 의식세계는 자아가 관장하는데 빙하의 꼭대기 위로 돌출되어 보이는 부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무의식 세계의 욕망은 꿈이나 말실수 등으로 가끔씩 수면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잠재되고 억압된 욕망을 찾아내는것이지요. 초자아는 금지와 금기 등을 학습한 자아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호등이 빨간 불이지만 지나가는 차도 없고 화장실도 급합니다. 이드는 건너가서 빨리 볼일을 보라고 합니다. 본능에 충실하라고 하지요. 하지만 초자아는 통제합니다. 그것은 법과 도덕에 위배되는 것이니 그러지 말라고 합니다. 이 두 세계의 충돌을 조화롭게 타협하는 것이 자아입니다. 본능을 따를 것인지 법을 따를 것인지 최종선택을 하는 것이지요.본능이 너무 억압되면 이것들이 돌출되어 나요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반면에 초자아의 지시만 따르다보면 그것은 재미가 없지요. 우리들 의식과 무의식의 어딘가에 중간타협점을 잘 찾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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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만리장성은 몇 년에 걸쳐서 건설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길이도 길이이지만 만리장성은 역사가 대단히 깊습니다. 춘추전국 시대에 만들기 시작했으니까요. 기원전 몇세기 경부터 시작했는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때는 북방유목민족인 흉노를 막기 위해 토성으로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이 각 국경마다 지은 토성을 연결한 것이 만리장성입니다. 현재의 만리장성은 석축인데 이는 명나라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16~17세기로 본다면 거의 2천년 가까운 혹은 넘는 기간이지요. 감히 상상도 잘안되는 기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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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실제로 이순신 장군님께서 12척의 배로 일본군 300척의 배를 격파하신건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왜군선의 수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12척의 배로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오늘날로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이순신 장군은 전술전략에 굉장히 능하고 일사분란한 지휘체계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조선 수군의 주력은 판옥선이고 이 판옥선이 높고 커진 것에는 사실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해 그런 것이었습니다. 원거리에서 포사격을 하는 것이 조선 수군의 주공격 형태였는데 어디서 언제 어느 지형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원균같이 몰살하기도 하고 이순신 장군처럼 적은 배로도 대승을 거두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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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에 상민도 첩을 두는 경우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부를 많이 축적하기가 상민 중에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부농은 조선 후기에나 등장합니다. 모내기 등이 보급되고 상품작물이 재배되면서 광작경영에 성공한 이들은 부농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공명첩이나 납속 등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했으며 족보를 위조해 양반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양반이 되어 축첩을 하기도 했겠지요. 조선 후기에는 양반수가 급격히 늘어나 조세부담이 농민층에 과중해져 농민층이 몰락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느 지방의 데이타를 보면 양반이 60~70프로 상민이 20% 정도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양반은 면역의 특권이 있었으므로 군포 납부층이 줄어들게 되어 정부재정에도 문제가 생길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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