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이런게 정말 통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간디의 비폭력 평화운동은 그 울림과 효과가 컸습니다. 운동의 정당성도 확보되고 호소력이 높아지지요. 간디의 비폭력 평화운동에 영향받은 3.1운동도 비폭력 평화운동을 지향했습니다. 일부 폭력사태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비폭력을 택했습니다. 우리가 그 시대적 특수성과 상황을 감안해야 하는데요,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 상황 속에서 무장을 하고 통치력에 맞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무장력을 갖춘다고 해도 식민지 통치기구도 피해를 입겠지만, 그 이상의 인명피해가 불가피하지요. 이럴 때 간디는 비폭력의 혁명을 일으킨 것이고, 그것이 민중과 세계민에게 호소하고 세계인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중국에서 천안문 사태나 최근의 각국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것도 탱크를 파고하는 것이 아니라 탱크 앞에 장미를 들고 막아서는 행동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역사적으로 지역감정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지역을 차별했던 적은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고려 욍건이 왕조를 개창할 때 가장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후백제의 인물을 기용하지 말라는 훈요10조를 남긴 것이 기원이라면 기원이겠지만 말씀드린 대로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지역감정은 이승만 정부 때는 좌우의 대결로 없었으며, 박정희 정부 때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호남소외 혹은 호남포위 전략으로 볼 수 있으며,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선거에서의 선전이 계기가 되었으리라 봅니다. 박정희 정부는 대구 경북은 정치적 기반으로 하였으며, 호남 경남 등은 이때 지역감정의 희생자였으며, 전두환, 노태우 정부까지 대구 경북정권이 이어져 지역감정이 지속되었습니다.김영삼 정부가 3당합당 이후 영남 정권으로 연장되면서 호남 포위 전략은 계속되었으며, 보수는 영남 진보는 호남 이런 구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Q. 예술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떻게 되는걸까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다양한 예술의 가치를 한가지 기준이라는 잣대로 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업성과 대중성이 공통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합니다. 오징어게임이 작품으로 뛰어나기도 하지만, 오락성과 대중흡입력, 시청자수, 흥행수익, 화제성 등으로 에미상을 받은ㅈ것처럼 말이지요. 물론 대중의 호감도와 인지도 이런 것과 관계없이 고가의 가치가 산정되는 추상미술 작품도 있지만, 평단의 평가보다 대중성이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더라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리더라도 작품성을 자동적으로 담보하지는 않기에 아카데미 수상이 어려운 경우도 많은 것이겠지요.
Q. 룩셈부르크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룩셈브르크는 대공이 군주가 되는 입헌군주제 국가입니다. 유럽연합 가입국이며, 개방정책으로 소득수준이 대단히 높은 나라이며 인구가 작고 영토도 제주도보다 살짝 큰 정도입니다.룩셈부르크는 프랑스의 부르고뉴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고 또 프랑스, 네덜란드,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았다가 19세기 후반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벨기에, 프랑스, 독일에 국경을 맞닿아 있습니다.
Q. 르네상스가 처음 시작된 나라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여 유렵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십자군 전쟁 이후 원거리 무역과 상업의 발달로 베네치아, 피렌체 등 이탈리아 상업도시가 번영했던 것에 그 배경이 있습니다. 이런 도시들에서 중세 예술과 다른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는데, 주로 그리스 로마문화 즉 고대문화가 재생됩니다. 대상인가의 후원으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천재화가들이 출현하고 활발히 활동하게 됩니다. 이런 새로운 흐름은 알프스 이북으로까지 퍼지는데, 에라스무스 등 사회적, 인문적 르네상스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