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이 통치 이념으로 성리학을 선택한 이유?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의 통치체제는 성종 때 갖추어지는데, 이에는 최승로의 시무28조가 큰 몫을 합니다. 이에 따라 고려는 나라운영은 유교식으로 하고, 백성의 정신생활은 불교식으로 일종의 이원적인 운영이었던 셈이었죠. 고려 후기 이후 불교는 왕실과 지배층에게서 막대한 토지, 노비 등을 받으면서 스스로 대농장의 대지주가 되어 농민을 수탈하게 되었으며, 술을 만들어 팔고 많은 수공업제품을 만들어 팔았는데 세속적 이익을 탐하는 것이 도를 넘게 되었습니다. 이에 지눌이 불교정화운동, 결사운동을 펼쳤던 시대적 배경이 이러했습니다.조선 건국은 공민왕 대 기용된 신진관리, 특히 성리학을 익힌 이들이 주축이 되어 성공하게 됩니다. 이들을 신진사대부라 하는데, 이들은 불교의 폐단을 크게 비판하였습니다. 고려가 망하게 된 이유를 타락한 불교와 불교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된 것으로 꼽았습니다. 조선건국의 설계자인 정도전은 불씨잡변에서 이런 불교를 겅하게 비판하였습니다.이러한 이유로 조선은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성리학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에는 자신들의 새왕조 개창을 정당화하는 측면도 강했습니다.
Q. 엘리자베스 바토리라는 인물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5세기에서 16세기 헝가리의 귀족으로 바토리는 유명한 연쇄살인마로 흡혈귀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십대에 결혼을 하고 다섯아이를 낳은 바토리는 남편이 전쟁으로 죽자 혼자남겨지게 되고, 슬로베키아의 성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어느 날 바토리는 발작을 일으키는데, 이때 자신을 부축하는 하녀의 팔을 물어 피가 크게 났으며 비명소리가 컸는데, 바토리의 발작이 멈추어, 바토리는 소녀의 피로 자신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성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한다는 소문이 났고, 나중에 성을 조사하니 수많은 시체와 고문도구가 나왔습니다. 그녀는 소녀들을 고문하고 죽인 후 피를 짜내 핏물로 목욕을 했는데, 그로써 젊음이 유지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그녀의 친척은 재상에 대공까지 높은 신분으로 인해 처형은 면하고 종신형에 취해지는데, 그녀의 하수인들은 처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