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설렁탕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먹게 된 것은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말씀하신 설렁탕의 기원은 여러가지 추측이 있으나 가장 대세가 된 기원설은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낸 후 제사를 위해 도축된 소를 이용해 푹 고아서 만든 국물에 밥을 말아 먹어서 생겼다는 이야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데요. 그렇기에 선농에 탕이 붙어서 선농탕이었고, 발음하기 편하게 설렁탕 정도로 변형되어 있다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이러한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이나 문헌 등에 등장하지는 않으나, 1924년 신문기사에 처음 등장한 기원설이라고 하죠.조선시대의 경우 왕에 의한, 양반에 의한 제사 등이 빈번했기 때문에 소에 대한 수요가 늘 있었을 것이기에 설렁탕 이야기가 완전히 불가능한 기원설은 아닐 것입니다.
Q.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이집트의 역사는 과거의 인물들 또한 오래전의 역사라고 생각할 만큼 상상 이상으로 오래된 역사인데요. 이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유적이 피라미드가 있죠. 피라미드는 고대 파라오의 무덤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내세를 믿었던 그들에게 있어서 무덤은 어떤 것 보다 중요한 것이며, 파라오 자신의 파워를 상징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질문하셨던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지금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있는 원뿔의 평평한 면이 아닌 계단식 형태였으며, 현존하는 계단식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제3왕조의 2대 파라오 조세르의 피라미드로서 약 BC2600년대건축자이면서 정치가였던 임호텝에 의해 설계된 유적이죠.
Q. 연산군의 어떤 모습 때문에 흥청망청이란 말이 생겨났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연산군은 즉위 후 여러가지 기행들을 보였는데요. 성격이 흉폭 했던 것은 기본으로 전국의 미녀 10,000명을 뽑아 궁궐로 모집하는 채홍사 라는 관리까지 파견하게 되죠. 이러한 미녀 중에서도 특히나 미모가 뛰어나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미녀들을 "흥청"이라고 불렀는데 이러한 "흥청"으로 대표되는 연산군의 패악질이 "망청"으로 이어졌다는 유희적인 표현으로 "흥청망청"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만들어진 것이죠.사실 대표적인 "흥청"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녹수 였으며, 장녹수에 빠져서 미쳐서 살았던 연산군이 결국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쫓겨나 유배를 가고 장녹수는 참형에 처해진 것으로 본다면 "흥청망청" 맞는 표현이죠!
Q. 우리 나라 태권도가 어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태권도 종주국인 대한민국은 그동안 태권도를 전세계에 알리고, 많은 세계인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있습니다. 태권도는 운동의 목적도 있지만 정신수양, 부모에 대한 효, 단체규율 등을 가르치기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태권도를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즐라탄 이브라이모비치가 대단한 태권도 유단자라는 것도 유명하죠.)태권도는 사실 올림픽에 채택된지 벌써 30년을 맞이했습니다. 1994년 파리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인데요. 하지만 여러해가 지나면서 태권도가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러번 퇴출 위기를 겪었으나 승리 규정 등을 점수 누적제에서 3판 2선승제, 라운드 승부로 변경해가면서 변신을 이루었습니다.
Q. 차지철은 호가호위 하던 사람인데 왜 그리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가까이 했을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차지철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포병 장교 임관을 한 군인으로서 박정희 군사쿠데타에 가담하였다고 하며, 이후 국회의원 출마를 하여 당선되기 까지한 조금은 특이한 이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했던 그를 경호실장으로 추천했던 인물은 다름 아닌 육영수 여사였으며, 이러한 일로 인하여 박정희는 차지철을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앉혔고 차관급 이었던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켜주기 까지 했죠. 이런 차지철은 박정희에 대한 극한의 충성으로 여러 무리한 일들을 하였으나 육영수여사가 추천했고, 충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신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또한 민주항쟁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국회의원들과의 문제에 있어서도 박정희 본인이 나서지 못하는 부분을 과감하게 돌진하는 모습에서 더 좋게 보았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중세 암흑시대는 정말로 ‘암흑’이었을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저도 역사를 배운 사람으로서 서양의 중세에 대해서 암흑의 시대라는 표현을 참 많이 듣고 접했었습니다. 중세는 이성이 함몰되고, 비합리적이며, 야만에 가깝다라는 표현과 이에 반대 되는 것으로 고대고전의 시대는 인간중심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대로 배웠죠. 그렇기에 중세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는 중세시대를 철저히 부정하고, 본인들이 추구하는 고전고대시대를 격상시켜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됩니다.이는 18세기에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퍼졌다가 점차 암흑시대라는 표현을 중세초기 또는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