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 농서를 최초로 간행한 것은 고려 후기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이암(李嵓)이 가져온 ≪농상집요≫를 복각한 것이다. 이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농학은 ≪제민요술≫ 등 중국 농서의 영향으로 나름대로 진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농서의 간행이 활발해지는데, 위에 든 중국 농서의 번각·초출(抄出)·이두번역 등이 이루어지는 한편 이를 참고로 편찬한 농서도 간행되었다.
세종 때의 관찬인 ≪농사직설 農事直說≫은 우리 풍토에 맞는 농사지침서로 주곡작물의 경작법을 간결하게 논술한 것이다. 세종은 농잠서(農蠶書)의 편찬·간행 외에 벼와 목화의 재배시험장을 설치하여 평안도와 함경도의 북변에도 재배를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를 했다.
한편 민간의 농서 저술도 활발하여 ≪금양잡록 衿陽雜錄≫·≪사시찬요초 四時纂要抄≫·≪청천양화록 菁川養花錄≫ 등 우수한 책들이 나왔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