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거시험에도 컨닝이 존재했나요?
조선시대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시험인 과거시험은 티비나 드라마에서 보면 넓은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던데, 그럼 컨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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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팀을 만들어 컨닝을 하기도 했습니다.
팀은 3명이상이 한 조가 되어 각자 역할을 분담했는데 선접꾼은 앞자리를 차지하고자 시험장 문이 열리면 달려갔는데, 문제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맨 앞에 문제를 걸어놓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잘 보이는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선접꾼이 자리를 차지하면 뒤따라 거벽, 사수가 등장했고 거벽은 족집게 과외선생으로 문제를 보고 답을 알려주는 대리응시자, 사수는 거벽의 말을 받아 글씨만 예쁘게 쓰는 필체 전문가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도 컨닝이 상당했다고 하는데요 대리시험을 봐주는 차술차작, 답안지를 바꿔 제출하는 정권분답, 답안을 미리써서 시험을 치는 외장서입, 시험장 경비들이 응시자에게 답을 알려주는 이졸환면출입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나 현제나 컨닝은 없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무슨방법을 써서라도 컨닝을 하였습니다.
과거에 합격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데 컨닝을 하다가 들키면 지금보다 심각한 페널티를 받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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