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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6.20

조선 말기 정부에서 내린 방곡령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한자말은 말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참 많이 있는데요 조선 말기 정부에서 실시하는 방곡령 무엇을 의미하는 정책인지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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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방곡(防穀)은 지방 수령이 지역의 곡물 반출을 금지시키는 것으로서 조선 후기 곡물 유통상의 폐단 중 하나로 지적되어 왔다. 재해 등으로 곡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수령이 곡물의 반출을 금지시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방곡을 실시하여 곡물 가격을 등귀(騰貴)시켜 곡물 매매에서 이익을 보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1876년(고종 13) 개항 이후 조선의 쌀이 일본으로 대량 수출되면서 곡물 부족 현상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지방관이 방곡령을 내려 쌀의 유출을 제한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일 통상 장정(1883)의 규정을 둘러싸고 배상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1889년 5월 황해도 관찰사 조병철(趙秉轍)은 일본 상인이 황해도에서 구입한 곡물을 인천으로 반출하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방곡령을 내렸다가 사전 통고 없이 진행되었다는 일본의 항의를 받은 외아문 독판의 지시로 해제하였다. 1889년 8월에는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趙秉式)이 지역의 흉년을 구제하기 위해 원산항을 통한 콩의 유출을 금지하는 방곡령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조일 통상 장정에서 정한 방곡령 사전 통보 시 예고 기간 1개월 조항을 지키지 않았다고 일본이 강력하게 항의하며 일본 미곡 상인의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결국 조선 정부는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1893년 함경도와 황해도 거류 일본 상인에게 11만 엔을 지불하기로 하였다.


    방곡령은 지역의 곡물 부족을 일시적으로 해결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지만, 조일 통상 장정을 둘러싼 해석과 배상 등 분쟁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에 조선 정부는 1894년 방곡을 전면적으로 금지시켰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개항 이후 일본의 경제 침탈에 맞서 시행한 것으로 방곡은 곡물을 막는다는 것으로 조선에서 재배한 곡물이 일본으로 가는 것을 막는 조치였으나 일본의 압력으로 제대로 시행되지는 못했고 대부분 철회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76년 강화도(江華島)조약으로 일본에 개국한 이래 일본상인들은 우리 농촌에 침투하여 갖은 방법으로 쌀·콩 등을 매점해서 이를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통제를 받지 않고 곡물이 계속 반출되자 곡물의 절대비축량이 부족하여 식량난을 가중시켰고, 1888년(고종 25)에는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할 방도가 없게 되자 전국 여러 곳에서 연달아 폭동이 일어났다. 이에 곡물수출항인 원산(元山)을 관장하던 함경도관찰사 조병식(趙秉式)은 1889년 9월 한일통상장정(韓日通商章程) 제37관(款)을 근거로 원산항을 통하여 해외로 반출되는 콩의 유출을 금지하는 방곡령을 발포하였다. 그러나 방곡령은 일본 상인들에게 타격을 입히면서 일본이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여 금방 해제됐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방곡령 [防穀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