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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태양새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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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이라고 하는 직책은 어느시대 직책인가요?

안녕하세요. 과거 한국사에서 남반이라고 하는 직책은 어느나라,시대 직책인가요?

그리고 과거 남반의 기능과 역할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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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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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궁궐에서 숙직하고 국왕을 시종하며 왕명을 전달하는 일을 맡은 내료(內僚)입니다.

    중국에서 당(唐)나라 이후 문·무반이 동서로 반열하는 데 대하여 근시(近侍)는 남쪽으로 반열한 데서 비롯하였습니다. 성종 때 관제를 정비하면서 처음 설치된 것으로 보입니다.

    문종 때 액정국 밑에 내전숭반(內殿崇班:정7품) 4명, 동서두공봉관(東西頭供奉官:종7품) 각 4명, 좌우시금(左右侍禁:정8품) 4명, 좌우반전직(左右班殿直:종8품) 각 4명, 전전승지(殿前承旨:정9품) 8명, 초입사직(初入仕職)으로 전전부승지·상승내승지(尙乘內承旨)·상승부내승지 등을 두었고, 정7품을 최고 관직으로 삼아 그 이상 진급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988년(목종 1)의 개정전시과 제9과에 선휘사(宣徽使), 제13과에 내전숭반(內殿崇班)이 있고, 1033년(덕종 2)의 피마식(避馬式) 규정에 남반선휘사(南班宣徽使:4품)·남반인진사(南班引進使:5품)·남반각문통사사인(南班閣門通事舍人:6품) 등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4품이 상한이었다. 이것이 문종 때 근시세력을 억제하면서 선휘사를 폐지하고, 인진사·통사사인은 각문(閣門)에 소속시키면서 변화된 것입니다.

    남반은 태조의 후예로 한미(寒微)한 자, 가문에 흠이 있는 양반 자제, 잡로(雜路)의 외손(外孫) 등이 관로에 진출하는 곳으로, 문무 양반과 달리 중간계층에 속하였다. 특히 7품에 제한하여 국가에 공로가 있을 때도 포상했을 뿐 품계를 올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왕 측근으로 활동한 까닭에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며, 원종 때 장군·낭장에 임명되는 경우가 있다가 충렬왕 이후에는 재상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반 [南班]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입니다.

    향리: 지방의 각종 업무를 맡아보던 하급 관리

    서리: 각 관청에서 일하는 가장 낮은 급의 관리

    남반: 궁궐에서 왕을 모시고 지키던 하급 관직

    정호 / 백정

    - "정"은 국가가 부과하는 역을 수행하는

    양인 남성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국가의 역이 정해져 있는 집단을 정호라 하고

    여기에 군인ㆍ향리 따위가 포함됩니다.

    반면 일반 양인 농민은 별도로 국가가 고정적인

    역을 부과하지 않기에 백정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백은 한자로 하얗다는 뜻이지만,

    '없다'는 뜻도 있습니다)

    군/현은 지금의 읍/면/동 같은 거라 보면 됩니다.

    기인: 향리의 자식들 가운데 서울로 올라와서

    자기 지역에 관해 도움말을 주던 사람


  • 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반은 고려시대 궁궐에서 숙직하고 국왕을 시종하며 왕명을 전달하는 일을 맡은 내료를 말합니다. 중국에서 당나라 이후 문·무반이 동서로 반열하는 데 대하여 근시는 남쪽으로 반열한 데서 비롯하였고, 성종 때 관제를 정비하면서 처음 설치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답변이 도움되셨기를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궁중의 숙직, 국왕의 시종·호종·경비, 왕명의 전달, 의장(儀仗) 등의 사무를 맡아보던 내관직 입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궁중의 숙직, 국왕의 시종·호종·경비, 왕명의 전달, 의장(儀仗) 등의 사무를 맡아보던 내관직인데 남반직은 후세로 내려갈 수록 잡류(雜流)·잡로로 취급되고, 또 말기에는 환자(宦者)가 이 직을 맡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더욱 천시되어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상은 주지만, 7품 이상의 관직은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항상 국왕의 측근에서 일하는 근시인 까닭에 간혹 발탁되어 파격적인 승진을 하는 예도 없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원종 때에는 내시로서 장군이나 낭장으로 임명되는 자가 있었고, 충렬왕 때에는 고위 관직에 임명되는 자도 많았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반이라고 하는 직책은 정구품 벼슬로 예종 (11년)에 삼반봉직으로 고쳐졌습니다.

    남만은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고려시대 궁중에서 숙직을 하며 왕의 시종과 호종 및 경비 등의 왕명을 전달을 맡았던 내관직 입니다.

    여기서 남반 이라고 부르는 것은 양반은 문반과 무반이 동서로 반영하는 데 반하여 왕 앞에 남쪽에 횡으로 반열 한 것에서 나온 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