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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찬밀잠자리170
대찬밀잠자리17023.06.02

조선시대 왕들은 유독 종기가 많나요?

조선시대 왕들의 사망한 이유나 생전에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보면 종기로인한 문제가 많던데 왜 조선시대 왕들은 이러한 종기문제가 많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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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역대 왕 27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12명에 달하는 왕들의 대표적인 사망원인으로 불리며 골치 꽤나 썩었던 ‘종기’.한때 방영된 ‘마의’라는 TV드라마로 인해 종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던 때가 있었다.요즘은 종기가 여드름 정도의 간단한 피부질환처럼 생각되기도 해 “어찌 국왕이 종기로 죽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사실 피부가 있는 곳 어디라도 생길 수 있는 종기는 과거에 굉장히 흔한 질환이었고 또 치료도 쉽지 않았으며 사람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무서운 병이었다고 한다.‘대보름날 부럼을 깨물어야 한 해 동안 부수럼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했을 정도로 종기는 이 땅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조선 시대에 ‘종기’라고 했던 질환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종기와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봉와직염,모낭염 등과 같이 부으면서 염증이 생기고 고름이 나는 모든 것을 뭉뚱그려 종기라 불렀다고 하며 때로는 림프절염,골수염,암까지도 포함되었다.종기는 피부의 모낭(毛囊)을 통해 화농성 균이 들어가서 생기는 염증을 일반적으로 부르는 용어다.또한 진피와 피하조직의 염증에 의한 통증이 있고 경계가 명확한 피부의 결절을 말한다.

    종기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균은 황색 포도상구균이다.이는 마찰,압박,다한증,습진,면도,기타 다른 원인에 의해 피부 연속성 장애를 일으키면 잘 발생된다.피부면역력이 좋을 경우에는 가벼운 모낭염 정도로 끝나지만 피부면역력이 약해서 염증이 더 커지고 깊게 자리잡을 경우에는 발열과 통증 등의 증상이 생기게 된다.그러다가 염증이 혈관까지 침범하게 되면 혈액을 통해 세균이 전신으로 퍼지게 되고 전신 발열과 통증이 생기면서 몸의 다른 부위에도 염증이 생길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많이 찾아오는 표피낭종은 피부 밑에 생기는 작은 유동적인 덩어리로 단단한 원형의 진피내 종양을 말한다.낭종은 수년간 작게 유지될 수도 있고,점점 커지기도 한다.이러한 병변에 화농성세균이 감염되면 염증이 유발되어 농양이 형성되게 된다.결국 염증에 의한 농양이 발생하게 되면 외과적인 치료가 필요하게 되며,대부분의 치료가 일차적으로 배농하는 것으로 시작하게 된다.일반적으로 표피낭종의 크기가 지속적으로 커지거나 염증이 반복되는 상황 등의 경우에는 반드시 병원을 찾아 의사와 상담을 받고,필요하다면 원인이 되는 낭을 수술로 제거하는 것이 환자분의 고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길이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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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혹시 ' 시집가는 날 등창 난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이 등창이 바로 종기입니다. 시집가느라고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하물며 왕이겠습니까.

    직업 중 가장 많이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이고 보니

    이렇듯 종기가 많이 난 것 같습니다.

    특히 정조는 종기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유명하지요.(일부는 독살설 그러는데 근거 없습니다.)

    종기를 잘 치료하지 못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앓는 그 정도의 종기는 아니었습니다.

    정조의 종기는 '종지'만하다고 했습니다. 간장 종지를 아시는지요.

    그 정도 크기의 종기가 온몸에, 심지어는 머리까지...

    정조는 한 여름에 종기를 앓다가 (더위에 옷도 제대로 벗지 못했지요.)

    기운이 쇠약해져 결국 돌아간 것이지요.

    두번째 이유는,

    조선에서는 목욕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목욕이 몸의 정기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제삿날, .. 이런 중요한 일이 있어 " 재계" 를 하지 않는 한 자주 목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왕도 이런 생각에서 특별하진 않지 않았나...

    그 외 운동부족과 기름진 음식의 섭취.. 뭐 이런 것도 영향을 미쳤겠지요.

    아무튼 조선 왕조에서의 종기는 거의 유전병처럼 왕에게서 왕에게로 전해졌던

    고약한 질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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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입니다.

    ✅️ 그 이유는 왕들이 '날 것'을 즐겨 먹었던 것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이 종기가 많았던 대표적인 이유로 꼽습니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 유전적인 요인이 작용했다는 주장 역시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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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왕들은 샙벽같이 일어나서 해야 할 일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이러한 과도한 업무로 인한 피로와 운동 부족 그리고 지나친 성생활 등 면역력이 약해지기 쉬운 요인들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종기 치료에 꼭 필요한 항생제 및 상처 소독 기술이 미비해 종기를 제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으로 추측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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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는 비위생적인 환경이었고 위생관념 자체가 모자라던 시절이기도 해 조선 왕들은 각종 피부병을 앓았으며 그 중 종기는 지금의 암이나 백혈병 수준으로 27명의 조선 임금 중 절반이 종기를 앓았고 종기가 직접적인 사인이 된 왕만 8명입니다.

    당시 한의학은 외과치료에는 전혀 무지했고 왕의 몸은 옥체이니 함부로 손댈수 없어 외과시술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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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종기로 고생하거나 생명을 잃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문종, 효종, 정조가 종기로 목숨을 잃었고 총 27명의 왕 가운데 12명이 종기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출처: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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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왕들이 종기로 인한 문제가 많았다는 이야기는 일부로 인해 알려져 있습니다. 종기는 흑색의 종균이라는 식물로서, 습한 환경에서 번식하여 이물질이 공기 중에 떠다니면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종기의 존재는 사회적, 환경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농경사회로서 농업이 주로 이루어졌고, 습한 환경이 흔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왕들은 고위층에 속하고 궁중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에 밖과의 접촉이 적었고, 공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종기가 번식하고 번영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왕들은 수원지에 위치한 경기전이나 창경궁 등의 건물에서 거주하였는데, 이러한 건물은 습기가 많고 공기 순환이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왕들은 종기로 인한 호흡기 질환에 노출되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기로 인한 왕들의 사망 비율이 과도하게 높았다거나 특정 왕들이 종기로 인한 질병으로 고통받았다는 것은 역사적인 기록에서 명확히 확인되지 않습니다. 종기로 인한 질병은 다양한 요인과 상호작용하여 발생할 수 있으며, 과거의 기록이나 이야기에서 완전하게 신빙성 있는 정보를 얻는 것은 어려운 부분입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왕들이 종기로 인한 문제가 많았다는 주장은 역사적인 사실로 확인되지 않으며, 현재로서는 추정이나 가설에 불과합니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관련 역사 자료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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