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894년 6월 8일 동학농민군과 전주 화약을 체결합니다. 비록 전주성이 함락되었지만 청군에 원군을 요청하여 청군의 도움을 받아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청군이 출병 다음날 인천으로 일본군이 출병하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갔습니다.
정부는 동학농민군의 진압하다가 자칫 청, 일 군이 들어와 충돌 양상이 일어날 수도 있고, 두나라 군대를 내보내기 위해서는 변란이 종식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농민군도 두나라 군대를 내보내기 위해 정부와 화약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