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유배를 간 선비들은 일상적으로 유배지에서 생활했습니다. 유배지는 주로 섬이나 외딴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유배를 간 선비들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유배 기간 동안 선비들은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의 활동을 하며, 유배지의 주민들과 교류하거나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의 형벌은 대명률에 따라 사형 유형 도형 장형 태형이라 하여 오형이라고 합니다. 유형은 사형 다음으로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유배를 갔던 기록에는 두살배기도 있고 코끼리와 원숭이도 있습니다. 유형을 받으면 장형 100대를 맞고 시작하였는데 장형을 받다가 죽어나가는 경우도 허다하였습니다. 양반은 돈을 내거나 뇌물을 써서 장형을 피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평민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2000리(785km) 2500리(981km) 3000리(1178km)였고 세종이후에는 600리(235km) 750리(294km) 900리(353km) 중죄를 지은 죄인들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외딴 섬으로 보내졌습니다. 유배인들은 노역이 따로 부과되지 않는 경우에는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했으며 유배지 군현 단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다만 조정에서 중죄를 지어 위리안치된 귀족과 왕족들은 유배지 거처 둘레에 가시나무 등 울타리를 만들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