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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침팬지184
외로운침팬지18423.09.20

조선시대에있는 규장각은 어떤곳인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 공부하다 보면 규장각이 나오던데 무엇을 하는기관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아는 전문가님 계시면 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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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2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규장(奎章)은 임금의 시문이나 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규장각은 역대 임금의 시문이나 글을 보관하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규장각은 그 이름대로 역대 왕의 글과 책을 수집 보관하기 위한 왕실 도서관의 역할을 하였으며 정조는 여기에 비서실의 기능과 문한(文翰) 기능을 통합적으로 부여하고 과거 시험의 주관과 문신 교육의 임무까지 부여하였습니다. 규장각은 조선 후기의 문운을 불러일으킨 중심기관으로 많은 책을 편찬했으며, 여기에는 실학자와 서얼 출신의 학자들도 채용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규장각은 조선의 왕실 도서관입니다. 조선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 서화 유교 등을 관리보관 곳입니다. 최초 구상은 7대 세조였고 1464년 양성지의 건의로 설치되었으나 세조 사후 폐지되었고 훗날 정조 때 다시 부활되었습니다. 규장각의 의의는 역대 국왕의 어제나 어필을 보관하는데에도 있었지만 당시 왕권을 위태롭게 했던 척신들의 음모와 횡포를 누르고 신하 중에 학식과 경륜이 뛰어났던 사람들을 모아 경사를 토론시켰으며 정치의 득실 백성의 고통을 살피는 등 다방면에 걸친 시폐를 개혁하는데 있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예절과 교육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왕권강화를 위한 참모기구로 운영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규장각은 조선 후기의 왕실 학문 연구기관이자 왕실 도서관으로 지금의 국립중앙도서관 격입니다. 역대 임금의 시문과 저작, 고명,유교,선보 등을 보관하고 수집 하였습니다.

    조선 세조 때 양성지가 임금의 시문을 보관할 규장각을 두기 청하였으나 실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조선 숙종 때에는 작은 전각을 마련하여 규장각이라 이름 하였으나 직제는 갖추지 않았습니다.

    이후 정조가 증인한 뒤인 1776년 11월 5일에 창덕궁 근원의 북쪽에 규장각을 세우고 제학.직제학.직각.대교.검서관 등의 관리를 두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립한 목적은 단순히

    선왕(先王)의 글과 서적을 보관‧제작하는

    임무를 넘어서서 관료기강을 쇄신할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정조는 규장각신을 가장

    가까운 신하로 둠으로써 관료기강을

    쇄신하고자 하였고, 이에 따라 1781년(정조 5) 2월 규장각의 기능을 본격적으로 정비하기 시작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규장각은 조선 후기 왕실 학문 연구기관이자 왕실 도서관으로 지금의 국립중앙도서관 격입니다.

    역대 임금의 시문과 저작, 고명, 유교 , 선보 등을 보관, 수집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조가 1776년에 건립한 규장각은 정조 개혁 정치의 산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규장각을 세우면 학문의 진흥을 통해 흐트러진 정치를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