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규장군이 이끈 흥화진 전투에서 거란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해요~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려고 시도한 1차 전쟁에서 40만을 이끌고 남하했을 때, 3천명 정도의 군사를 이끈 고려의 양규 장군이 흥화진이라는 곳에서 거란군을 격퇴했다던데요. 40만의 거란족이 3천명의 군사를 뚫지 못한 이유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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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규장군은 거란군의 공격을 예상하고 흥화진 주변에 견고한 방어 시설을 구축했습니다. 또한, 거란군의 기병 공격을 막기 위해 진흙탕을 만들고, 거란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 뛰어난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화진은 지리적으로 요충지였으며, 고려는 이곳에 튼튼한 방어벽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양규 장군은 거란의 공격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적절한 타이밍에 반격을 가해 거란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이 때(12월 16일) 큰 별똥별(유성)이 곽주에 떨어졌다는 내용이 있다. 우연한 천문 현상일 수도 있지만, 운 좋게도 운석이 곽주의 성곽에 떨어져서 피해를 줬을 가능성도 아주 없진 않다. 이 경우 공성측 병력이 수성측 병력의 1/3에 불과함에도 불가사의하게 공성에 성공한 점, 양규가 탈환한 곽주성을 요새화하지 않고 내부 주민들을 전부 대피시킨 점, 이후의 여요전쟁에 곽주성이 주요 전장으로 등장하지 않는 점 등이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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