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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2.21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은 무엇을 하는 직책인가요?

조선시대에서 제일 높은 관직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 3가지 직책은 무슨 역할을 하던 직책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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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2.2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영의정은 조선시대 의정부에서도 가장 높은 관직의 사람을 말합니다. 현대의 총리와 흡사한 위치이며, 정치와 행정을 총괄하며 학술기관의 영사까지 겸하는 자리다. 직위가 높은 만큼 업무의 책임과 권한도 가장 컸다. 영의정은 왕을 보좌하여 국정을 총괄하는 역할도 맡았으며, 좌의정과 우의정은 이렇게 막중한 역할을 하는 영의정을 보좌했습니다 .

    영의정 바로 다음가는 높은 관직이 바로 좌의정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가장 서열이 높은 영의정이 권력이 제일 막강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명예직에서 유래한 영의정보다는 실질적인 실세가 좌의정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좌의정은 백관을 통솔하고 일반 정치 및 외교의 일을 맡으며, 우의정과 함께 왕을 보조하고 구정을 논의했습니다.

    삼정승은 품계는 동일하지만 특배가 아닐 경우에는 좌의정은 항상 2순위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우의정은 삼정승 중에서 가장 마지막인 세 번째에 해당한다. 정1품 관직으로 정치와 행정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보통 직장에서도 말단 사원이 가장 일을 많이 하는 것처럼 삼정승 중에서도 실제 업부량은 우의정이 가장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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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삼정승이라 하는 데, 조선시대 백관의 장으로 국정을 통괄하던 최고의 관리들입니다.

    오늘날의 국무총리, 부총리에 해당하는 정치 지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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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3정승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의 의정부의 우두머리들입니다. 영의정은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이고, 좌우정의 조정의 다수파를 대표합니다. 그리고 우의정은 병조(군권), 형조(사법), 삼사 등을 감독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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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

    영의정

    1400년(정종 2) 4월 관제를 개혁할 때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의정부(議政府)로 개편하고, 그 최고 관직을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라 하여 정1품관으로 보(補)하고 백관(百官)과 서정(庶政)을 총관장하게 하였으며, 그 밑의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과 함께 3의정이라 하였다. 별칭으로는 영상(領相) ·영각(領閣) ·수규(首揆) ·영규(領揆) ·원보(元輔) 등 많았으나, 특히 영상으로 불렸다.

    영의정은 좌 ·우의정, 동의정부판사(同議政府判事) 등을 합쳐 5명의 원로대신이 합좌(合坐)하여 외교문서나 고열(考閱)하고, 사형수를 복심(覆審)하는 정도의 실권없는 직위였다. 1436년(세종 18) 세종은 3의정이 국가의 최고 원로이면서 국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정승을 둔 취지에 어긋난다 하여 6조(曹)에서 각기 맡은 일을 먼저 의정부에 품의하고, 의정부에서는 그 가부를 상의 계문(啓聞)하여 임금의 전지(傳旨)를 받아서 6조에 회송, 행정을 집행하게 하는 의정부의 서사(署事)제도를 실시하여 권한이 강화되었다. 이전에는 좌 ·우의정이 총리로서 모든 공무를 총관하였으나 이 때에 이르러 영의정도 서사에 참여하여 영의정이 총리가 되었다.

    이로부터 3의정을 삼공(三公) ·삼정승(三政丞)이라 하였다. 다만 이조(吏曹) 및 병조(兵曹)의 인사임명과, 병조의 군사 동원, 형조(刑曹)의 사형수 이하의 죄수에 대한 사항 등은 각 조에서 임금에게 직접 보고 시행하였으므로 의정부에서는 이에 간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조(世祖)가 즉위하여 의정부의 서사를 폐지함에 따라 영의정의 막강한 권력은 다시 실권없는 무력한 지위로 전락하였는데 이는 단종(端宗) 때에 수양대군의 정적(政敵)이었던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등이 영의정 ·좌의정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여 자기의 행동을 크게 제약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성종(成宗) ·중종(中宗) 때에 여러 번 의정부의 서사제를 회복하자는 의논이 있었으나 다시 회복하지 못하였고, 명종(明宗) 때 비변사(備邊司)를 설치하여 나라의 중대사를 심의하게 되면서부터 3의정은 도제조(都提調)로서 참여하기도 하였다.

    영의정은 비록 권한이 약화된 직위였다 하더라도 정부의 수반(首班)으로서, 조선시대의 최고관직으로 존속되다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의정부의 총리대신(總理大臣:勅任官)으로 명칭이 바뀌고, 이후 내각 총리대신 ·의정 등으로 개칭되었다.

    좌의정

    영의정의 아래, 우의정의 위로, 백관(百官)을 통솔하고 일반 정무(政務)와 외교관계 등의 일을 처리 운영하였다. 1401년(태종 1) 문하부(門下府)를 혁파하고 의정부를 설치하면서 문하부의 좌 ·우정승을 의정부의 좌 ·우정승으로 하였다가 1414년(태종 14) 의정부판사(議政府判事)로 고쳐 정원 2명을 두었는데, 같은해에 좌 ·우의정으로 나누어 개칭, 처음으로 좌의정이라는 관명이 생겼다. 좌의정에게는 좌정승(左政丞) ·좌상(左相) ·좌규(左揆) ·좌합(左閤) ·좌승상(左丞相) 등의 별칭이 있었으며, 영의정 ·우의정과 함께 삼정승 ·삼의정 ·삼공(三公) 등으로 합칭(合稱)되었다.

    우의정

    우상(右相)·우정승(右政丞)·우대(右臺)·우합(右閤)·우규(右揆)·단규(端揆) 등이라고도 한다. 백관(百官)을 통솔하고 서정(庶政)을 총리한 최고행정기관인 의정부를 이끈 3의정(三議政)의 하나이다.

    1414년(태종 14) 초기의 의정부판사 2명을 좌·우의정으로 나누면서 처음 명칭이 생겼으며,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관제가 개혁될 때까지 480년간 존속하면서 국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의정부의 서사(署事)제도가 있을 때 영의정·좌의정과 함께 합좌(合坐), 육조로부터 올라온 모든 공사(公事)를 심의하여 국왕의 재가를 받아 6조에 회송하여 행정을 집행하게 하는 권한을 지녔다.

    경연영사(經筵領事)·춘추관감사(春秋館監事)·홍문관영사(弘文館領事)·예문관영사(藝文館領事), 세자부(世子傅)와 비변사(備邊司) 도제조(都提調)도 겸임하였다. 영의정·좌의정과 더불어 3의정·3정승·삼공(三公)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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