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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스컹크183
우람한스컹크18323.08.20

명나리에서 사신 방문시 누가 응대했나요?

명나라에서 사신이 방문했을때 사신을 응대하는 사람은 누구였나요? 왕이 직접 응대하기에는 격이 맞지를 않았을텐데 신하중에 가장 서열이 높은 사람이나 차기 왕위계승자가 응대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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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접사(遠接使)는 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관직 또는 그 관원이며 중국 사신이 돌아갈 때는 반송사(伴送使)라 개칭하여 다시 의주까지 환송하게 하였습니다. 조선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중시하여 중국에 가는 사신뿐 아니라, 조선으로 오는 중국 사신의 접대에도 정성을 들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중국 사신 접대 장소는 한양 밖과 안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전자는 원접사 또는 접반사가, 후자는 영접도감의 관반이 지휘하였습니다.

    원접사는 국경에서 처음으로 칙사를 맞이하는 접대 관원으로서, 체류 기간이나 돌아가는 여정에도 간여하므로 신중하게 선발했습니다. 태종대 이후 조선말까지 정2품 이상으로 임명되었는데, 병자호란 이후의 대청 관계에서는 대명 관계에서보다 덜 중시되었습니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태조 대까지는 접반사로 부르다가, 태종 초에 원접사로 바꾸었고, 점차 칙서를 가져오는 칙사는 정2품 이상의 원접사가, 그 밖의 사신은 종2품의 접반사가 맞이하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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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희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을 기준으로 말씀드립니다. 명나라와 청나라 사신은 황제 대신 온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황제와 격이 같았습니다. 따라서 국왕이 명이나 청 황제를 맞이하기위해 친히 행차하여 모화관이라고하는 중국 사신 접대 장소로 갔습니다. 물론 중국 사신이 국경에 들어오거나 하는 과정에서 행정적인 처리를 하거나 응대를 하는 사람은 지방관으로 파견됐던 평안도 감사나 의주 부윤이기는 했습니다만, 궁금해하시는 격이 맞는 응대자는 조선 국왕이었습니다. 심지어 엄밀히 말하자면 청나라의 경우에는 군신관계에 있었기에 청나라 사신이 황제 대리로서 더 우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조선 국왕은 청나라 사신이 오면 황제에게 인사드리는 예인 삼궤구고두례를 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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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에서는 선위사(宣慰使)라고 하는 직책이 있었는데.이는 조선 시대에 여러 나라의 사신이 입국하였을 때 그 노고를 위문하기 위하여 파견한 관리로 중국 사신에 대해서는 원접사와 더불어 의주, 안주, 평양, 황주, 개성부의 5개 처에 선위사를 파견하였고, 일본 및 유구 사신에 대해서는 선위사만을 보내어 영송하였습니다. 중국 사신에 대한 선위사는 2품 이상의 조관을, 요동 도사의 선위사와 일본, 유구의 사신의 선위사는 정3품 이상의 조관을 임명하였다고 합니다. 명나라에서는 사신으로 주로 환관이 많이 왔는데.많은 재물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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