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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아웃낫아웃
스트라이크아웃낫아웃23.03.22

우리나라 온돌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찾을 수 있나요?

바닥에 등 지지면 그리 시원할수가 없는데요 우리생활에서는 보편적인 온돌의 흔적은 언제부터 시작됐으며 최초의 온돌 사용흔적은 어디에서 찾을 수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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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10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초의 온돌은 방안 전체를 난방하는 것이 아니라, 방의 일부분에만 구들을 놓고 난방하는 쪽구들이었습니다. 쪽구들을 처음 만든 사람들은 옥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전 4〜기원후 1세기 시기 연해주 남부의 크로우노프카 문화(옥저 문화)에서 이미 사용했음이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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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4세기 옥저시대부터 온돌이 발명되었다고 추정합니다

    실제로 구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이미 온돌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형태가 발견되었고 고구려때 긴 구덩이를 만들고 그 아래에 불을 때어 따뜻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구성서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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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온돌의 기원은 청동기 시대와 삼국 시대, 부뚜막식 화덕과 연기통로가 있었던 원시적 형태의 난방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해외문화홍보원의 다음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kocis.go.kr/koreanet/view.do?seq=10107&R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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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우리나라의 온돌은 선사시대부터 사용되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 시대부터 돌로 된 바닥과 불로 난 방식의 난방 시스템을 사용해왔으며, 이후 고려 시대에는 온돌 방식의 난방 시스템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고려 시대의 온돌은 바닥에 깔린 돌로 된 열기구에서 나오는 열기를 이용해 방을 난방하는 방식으로, 이후 조선 시대에는 이러한 온돌 방식이 보급되어 일반적인 난방 시스템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온돌을 이용한 난방이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온돌 방식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현대에 이르러 전기, 가스 난방 기술이 발전하면서 온돌 방식은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에도 한국 전통 가옥이나 한옥에서는 온돌 방식의 난방 시스템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를 지키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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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온돌문화는 고구려 문화에서 볼수 있었고 당시 요동지방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난방형태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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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도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정말 아쉽게도 ㅜㅜ 온돌 시스템의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빠르면 기원전 1세기 한국에서 사용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온돌 난방의 가장 초기 알려진 예는 경상도 고대 도시인 왕궁리에서 발견되었으며, 이곳에서 기원후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중 바닥 플랫폼이 발견되었습니다. 참고로 조선시대에 건축 기술과 재료의 발달로 건축이 더 쉽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온돌 난방이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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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동기시대를 거쳐 원 삼국시대 부뚜막식 화덕과 연도가 설치된 원시적 형태의 난방방식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고 기원전 3세기~1세기경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원시적 온돌 유적들이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 점들로 미루어 보아 한반도에서 온돌문화는 약 2천년 이상 전승되어 온 것으로 추정 되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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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온돌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정확한 시작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백제 시대에는 온돌과 함께 천장에 이슬을 막는 장치인 천장장이나 벽난로 등도 사용되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온돌 방식이 발전하여 콩나물이나 천연염색 등을 만드는 색온돌, 목욕을 할 수 있는 목욕온돌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온돌이 더욱 발전하였으며, 이때부터 현재의 온돌방식이 형성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온돌은 우리나라의 가정집이나 한옥 등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전기나 가스 등 다양한 난방기술이 발전하여 온돌의 사용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온돌은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와 건강에 대한 관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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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그러나 두만강 하구의 서포항 집터의 고래 없이 돌과 진흙으로 된 구들유적은 신석기시대인 B. C3000년 경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가장 오래된, 바닥을 따뜻하게 데우는 초기온돌이다. 온돌은 방에 연기가 나지 않는 세계최초의 난방법으로 '누운 불'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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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2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지상의 온돌이 보편화되면서 현재와 같은 온돌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온돌방은 서울 청진동 같은 도시보다는 회암사지 같은 시골에서, 도시 안에서는 시전(市廛)보다 주택에서 규모가 크다. 이것은 땔감의 조달이나 절약 문제와 관련이 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사찰 유적으로 경기도 양주 회암사지가 있다. 이곳은 1998년부터 다년간에 걸쳐 전면적으로 발굴된 절터이다. 이 유적에는 한 건물지에 온돌방이 2~3개에 이르는 것도 있다.
    회암사는 늦어도 12세기 무렵 창건되어 16세기 후반에 폐사되었다. 건물 바닥으로는 전돌이나 불다짐 흙바닥, 마루, 온돌이 있다. 온돌방의 규모를 따지면 정면 1칸, 측면 1칸의 1칸 규모에서 정면 4칸, 측면 3칸의 12칸 규모까지 다양하다.

    아궁이와 굴뚝은 두 차례 이상 보수를 한 사례가 많고, 아궁이에는 난방 목적의 함실아궁이와 취난 목적의 부뚜막아궁이가 모두 나타난다.
    회암사지 유적은 온구들이 주휴를 이루지만, 쪽구들의 유산도 나타난 모습을 보인다.
    다른 곳으로 서울 도심의 온돌 유적을 살펴보면 서울 종로에서는 청진구역, 종로2가 40번지, 종묘 광장, 공평구역 등에서 주거 유적이 발굴됐다. 이 중 온돌방의 수를 기준으로 하면 공평구역에서만 조선 건국시기에 가까운 층에서 현대에 가까운 층에 이르기까지 9→11→13→50개로 증가해 온돌 보급이 확산된 정황을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이곳만으로는 조선시대 온돌이 확산되어 갔을 것이란 가정을 뒷받침하기 어려우며, 문헌상으로 보면 여기서 가까운 궁궐에는 온돌 보급이 비교적 늦었습니다. 즉 민간에는 일찍 온돌이 보급됐지만, 상류 주택이나 궁궐에는 늦게 확산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출처 : 가스신문(http://www.ga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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