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구체적으로 작품의 제목을 붙이지 않아 후대에 의해 <두루마리 입은 자화상>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 등으로 불리는 세 점의 자화상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이 제작한 때는 1915년 혹은 그와 비슷한 시기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부채를 든 자화상>의 왼쪽 상단에 분명하게 '1915 Ko, Hei Tong'이라는 서명이 남아 있기도 하거니와 동경예대를 졸업하면서 졸업작품으로 <정자관을 쓴 자화상>을 제작한 년도 역시 1915년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는 고희동(1886-1965)으로 190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입학하여 최초의 전공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중앙고보, 휘문, 보성, 중동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근대적 의미의 미술 단체인 1918년 서화협회를 결성하였습니다. 1914년 <청춘> 창간호에 '공원의 소견'은 우리나라 최초의 유화입니다. 그리고 유학시절에 3점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부채를 든 자화상'은 2012년 근대 문화재로 등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