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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양241
빼어난양24123.11.07

백정은 조선시대의 일반 백성이 아닌 다른 유목민족이나 이민족으로 추정하는데 그 배경이 무엇인가요?

백정은 조선이전부터 다른 이민족출신등으로 유입된 민족으로 추정하고 있고 이들은 일반 농사를 짓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꺼리는 유희나 도축업을 쭉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배경과 이유는 무엇이었고 정확히 어떠한 존재로 보고있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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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정은 조선시대에 도살업, 유기제조업, 육류판매업 등을 주로 하며 생활하던 천민층을 말합니다. 고려시대에는 농민층 일반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였으나 고려말과 조선초를 거치면서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천민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원래 우리나라로 이주한 말갈인, 거란인들을 양수척이라 했는데 이들은 유목민적 생활의 연장선상에서 유기 제조와 판매, 도살업, 육류 판매업을 생업으로 삼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까지 백정은 자기 조상 대대로 자신의 땅을 가지고 농사짓는 농민, 즉 자영농을 칭하는 말로 의미가 조선시대의 백정과는 다릅니다.

    고려시대 백정이 어떤 계층인지 알기위해서는 고려시대의 사회제도를 알아야 하는데 고려시대 양인은 생각보다 많은 계층을 포함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삼국시대까지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세습 귀족들은 고려 초 광종의 개혁에 따라 많은 귀족은 물론 왕족들까지 정치에서 배제되었고 고려시대의 상류층으로는 문벌기반의 정부고관들과 그래도 지방에 지지기반이 있던 대지주에 속하던 호족들이 포함되어있었고 중류층으로는 하급관리와 초기에는 지방의 향리들이 포함되어있었으며 계층간의 결혼까지 제한되던 천민 계층을 제외하면 이 외의 계층은 모두가 양인으로 분류되는게 고려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지방의 향리들은 전까지 중앙관리였던 귀족들이 중앙에서 실권을 잃고 대거 낙향하고 자신들이 하던일을 직접 하기 시작하고 중앙에서 지방관들이 파견되기 시작하자 점차 영향력을 잃고 점차 평민으로 격하되었으며 그 전까지는 중앙정치에서 소외되어 천민취급을 받던 향, 소 부곡민들이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가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위치가 점점 더 올라가 양인에 속하게 됩니다. 이처럼 일반적인 고려시대 양인은 폭넓은 계층을 포함했으나 그중 백정이라 불리던 자영농들은 양인 중 , 고려 신분제 전체를 통틀어서도 중산층이라 불릴만한 계층에 속하는 이들이었으며 실질적으로 고려를 떠받치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흔히 아는 백정은 양수척, 수척, 화척, 무자리라고도 불렸으며 일반적으로 의미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 떠돌아다니며 천업에 종사하던 양인 계층을 총칭합니다.

    이들은 향소부곡민과 함께 양인 중 최하급 계급으로 분류되었으며 일반 농민들과 같은 형태로는 국가에 대한 조세 부담을 지지 않았고, 노비와는 달리 어디 한군데 매여 살지 않았습니다.

    떠돌이생활을 하며 사냥, 축산, 도축 , 무두질, 고리, 망나니 활동 등으로 생계를 꾸렸고, 고려사에서는 후백제 정벌 시 굴복하지 않아 압록강 밖으로 쫓아 보낸 자들이 시초로 나옵니다.

    이 외에 국가의 부역과 호적에도 제외된 방랑인이라는 기록도 있으며, 기녀들의 시초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기원은 주로 북방 민족 출신으로 포로로 잡힌 거란의 후손이나 동북면에서 흘러들어온 여진인 등 , 귀화했으나 정착 생활에 적응하지 않고 방랑생활을 하던 유목민족 출신들로 추정됩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백정의 기원은 삼국시대에서 고려초까지 소급됩니다. 당시의 혼란한 상황에서 말갈인 · 거란인들이 우리나라에 흘러 들어와 양수척(楊水尺)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하였습니다. 그 뒤 화척으로 변모했다가 조선시대에 백정으로 되었습니다. 화척은 대개 유목민족 출신이며, 조선 사회에 정착하면서도 유목민족의 생활 습속을 버리지 못하여 정착에 어려움이 많았고, 수렵 및 목축 생활에 터득한 도살 기술을 살려 주로 도살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외적과 내통하여 난을 일으키거나 노략질을 일삼아 백성들로 부터 지탄을 받아 부정적 인식으로 차별 대상으로 고착화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