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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찬밀잠자리170
대찬밀잠자리17023.05.15

칸트가 철학역사에 미친 영향이 어느정도인가요??

철학책을 읽다보면 칸트를 인용하는 구절이 많던데 칸트라는 사람이 철학적으로 어떤 영향을 키쳤길래 철학자들이 칸트의 이야기를 자주 인용하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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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는 근대 서양철학사에서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종합한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칸트 철학의 의의를 설명하는 글을 소개합니다.

    “근대의 탄생 이후 세계의 주인이 된 인간 이성의 인식능력이 무엇인가를 놓고 경험론은 바깥 세계의 경험에서 근거를 찾았다면 합리론은 신을 설정했다. 그러나 칸트는 경험이나 신 같은 별도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 자체의 활동을 통해 이성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이성이 자기 내부의 법칙에 따라 세계를 인식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이전까지 철학자들과 달리 칸트는 객관 세계를 이성의 인식 능력에 종속시킨 것이다. 대상은 우리 이성의 인식 법칙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식의 판단 기준을 객관 세계에서 이성 내부로 바꾸게 된 것을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스스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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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칸트는 도덕 법칙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이성의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가 최상의 규범적-규제적 질서로서 ‘도덕 법칙의 객관적 실재성(objective reality of the moral law)’을 언제나 이미 그 자체로 의식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주장은 도덕적 의무 개념에 대한 분석에 근거하여 도덕 법칙의 체계를 세우고자 한 『윤리형이상학 정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즉, 보다 이른 시기에 쓰인 『윤리형이상학 정초』는 도덕적 의무 개념으로부터 정언 명령을 연역하고자 한 반면, 이후에 쓰인 『실천이성비판』은 이러한 연역의 시도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도덕적 의무 개념에서 정언 명령이 연역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명령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천이성비판』은 연역의 시도를 포기한 채 도덕 법칙의 객관적 실재성을 더 이상 증명될 수 없는 단순한 사실로서 논의의 출발점에 전제할 뿐이다.

    그러나 도덕 법칙을 ‘이성의 사실’로서 당연하게 전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의 문제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된다. 특히 칸트를 ‘도덕적 구성주의자(moral constructivist)’로 해석할 것인지 ‘도덕적 실재론자(moral realist)’로 해석할 것인지에 따라 그의 윤리학을 평가하는 관점이 달라진다. 구성주의적 해석을 옹호하는 허만(B. Herman), 코스가드(C. Kosgaard), 롤즈(J. Rawls), 레스(A. Reath) 등은 인간이 ‘실천적 합리성’을 지닌 행위자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다른 외적 가치에 의존하지 않고서 칸트적 윤리학을 성립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실재론적 해석을 옹호하는 에머릭스(K. Ameriks), 가이어(P. Guyer), 랭턴(R. Langton), 우드(A. Wood) 등은 ‘인간’의 무조건적 가치를 강조하는 칸트의 철학이 결국 정당화될 수 없는 일종의 독단을 상정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병덕은 실재론적 해석에 반대하여 구성주의적 해석이 어떻게 독단에 빠지지 않고서도 ‘이성의 사실’을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 위의 [실재론적] 관점에 반대하여, 나는 이 논문의 나머지 부분에서 칸트적 구성주의의 진영을 따라 도덕적 법칙을 옹호하는 비독단적 방식이 있다고 논증할 것이다. 즉, 도덕 법칙에 앞서면서 그것을 정초하는 가치의 독립적 질서에 호소하지 않는 방식 말이다.”(Lee, 2018: 49) 다만, 이러한 논의는 칸트의 윤리학에 대한 주석적 해설보다는, 오히려 ‘칸트적 구성주의(Kantian constructivism)’ 일반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나의 칸트적 해설이 모든 점에서 칸트 자신의 관점을 충실하게 따르도록 만드는 것은 나의 의도가 아니다.”(Lee, 2018: 49)

    3. 도덕 법칙에 대한 정합론적 옹호

    도덕 규범은 ‘이론적 논증(theorectical argument)’과 ‘실천적 논증(practical argument)’ 어느 쪽에 근거하여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도덕 규범을 그 규범에 선행하는 다른 토대에 근거하여 정당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우선,

    도덕 규범은 이론적 논증에 근거하여 정당화되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what we ought to believe)’를 다루는 이론적 논증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what we ought to do)’를 다루는 실천적 논증과는 서로 다른 논의의 범주에 속한다. 따라서 이론적 논증으로부터 실천적 논증을 규제하는 ‘도덕 규범’을 도출해내고자 하는 시도는 범주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도덕 규범은 실천적 논증에 근거하여 정당화되지도 않는다. (1) 오히려 실천적 논증이 도덕 규범을 비롯한 실천적 규범에 의존한다. 특정한 행위나 판단이 실천적 규범에 부합하는지의 여부가 그 행위나 판단의 실천적 정당성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실천적 규범이 정당화의 기준으로서 전제되지 않고서는 행위나 판단에 대한 실천적 논증을 수행할 수조차 없다. (2) 특히 도덕 규범이 다양한 실천적 규범 중에서도 ‘무조건적’ 실천적 규범이라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 ‘사려 규범(prudential norm)’과 ‘제도 규범(institutional norm)’ 같은 조건적 실천적 규범은 더욱 근본적 층위의 다른 실천적 규범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덕 규범과 같은 ‘무조건적’ 실천적 규범은 다른 ‘조건적’ 실천적 규범으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도덕 규범이 우리에게 언제나 이미 ‘이성의 사실’로서 주어져 있다는 주장은 우리가 ‘합리적 행위자(rational agent)’라는 점으로부터 해명되어야 한다. 우리가 인간 사회에 참여하여 다른 합리적 존재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이상 우리는 합리적 행위자를 규제하는 도덕 규범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가령, 한 개인이 경찰 조직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경우 그는 경찰 조직의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 경찰 조직의 규범은 그 집단에 속한 각각의 경찰 구성원에게 따라야 할 법칙으로서 주어진다. 마찬가지로, 도덕 규범이 우리에게 객관적 실재성을 지니는 이유는 우리가 인간 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합리적 행위자이기 때문이다. 도덕 규범은 우리가 합리적 행위자로 존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우리가 한 조직에 구성원으로서 참여하는 한, 우리는 조직의 규정에 종속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는 우리가 도덕적 공동체에 구성원으로서 참여하는 한, 우리가 그 사실에 의해 도덕 법칙에 종속된다고 말할 수 있다.”(Lee, 2018: 53) 이러한 논의는 홉스의 ‘자연법(natural law)’ 개념과 칸트의 ‘도덕 법칙(moral law)’ 개념 사이의 비교를 통해 더욱 명료해질 수 있다. 즉,

    (1) 홉스는 우리가 인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기 보존’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이성에 주어져 있는 자연법에 따라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연법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존재자는 인간 사회 바깥에 단순한 동물로서 남겨진 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속에서 살아야 할 뿐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칸트 역시 우리가 인간 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합리적 행위자’라는 사실로부터 도덕 법칙이 우리에게 지니는 객관적 실재성을 해명한다. 도덕 법칙을 거부하는 것은 ‘합리적 행위자’인 인간으로서 존재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2) 홉스는 ‘자기 보존’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자연법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즉, 자연법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그 규범이 결과적으로 우리의 생존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도덕 법칙을 그보다 선행하는 다른 원칙에 근거하여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좋다’ 혹은 ‘나쁘다’와 같은 규범적 용어가 도덕 법칙에 근거하여 규정되어야 하는 것일 뿐, 도덕 법칙이 이러한 규범적 용어에 따라 규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합리적 행위자로서 우리는 언제나 이미 특정한 규범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판단은 우리가 인간 존재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바로 그 규범에 근거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칸트적 인간 이해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 라이프니츠-흄이 제시한 ‘인간에 대한 얇은 관념(thin conception of a person)’이 인간을 단순히 인식하는 존재나 속성의 다발로서 이해하는 것과 달리, 칸트가 제시한 ‘인간에 대한 두꺼운 관념(thick conception of a person)’은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 규범을 설정하는 자율적 주체로서 이해한다. 즉, 인간은 가치중립적 상태로 존재하다가 이후에야 외부로부터 규범을 부여받게 되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이미 자기 자신이 자율적으로 받아들인 특정한 규범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존재이다. 인간의 본성은 처음부터 특정한 규범적 질서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 두꺼운 관념에 따르면, 도덕 법칙에 종속되는 것은 단순한 동물과 구별되는 합리적 인간으로서 우리가 지닌 본성의 일부이다.”(Lee, 2018: 55)

    따라서 우리가 ‘이성의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규범의 정당성에 대해 물음을 던지기 위해서조차 우리는 다시 그 규범에 의존해야 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규범적 질서를 벗어나서는 그 어디에서도 정당성의 토대를 발견할 수 없다. ‘인간에 대한 두꺼운 관념’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이러한 정합론적 통찰은 보다 구체적인 두 가지 논제로 다시 요약될 수 있다. (1) 규범적 질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합리적 존재’로서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다. (2) 규범적 질서는 더욱 근본적인 다른 근거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는다. 즉, 우리가 인간 존재로서 본성적으로 규범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외에는 규범을 정초하는 다른 토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규범적 질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종의 ‘개념적 사실(conceptual fact)’이다. “이러한 종류의 개념적 사실은 이론적 추론이나 실천적 추론에 의해 더욱 근본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라. [……] 대신, 그것은 오직 우리가 어떤 종류의 존재자인지와 연관된 우리 자신의 개념에 대한 적절한 분석의 방식에 의해서만 옹호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이 근본적인 개념적 사실을 ‘이성의 사실’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Lee, 2018: 55) 이병덕은 또한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 어떠한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또는 비판하기 위한) 규범, 기준 또는 규칙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의 개념적 틀(conceptual framework)이며, 따라서 어떠한 정당화 물음도 우리의 개념적 틀에 근거하여 다루어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의 개념적 틀 내부의 이유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한 믿음이 참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정합론적 통찰이다. 따라서 도덕 법칙이 합리적으로 옹호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물음을 다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개념적 틀에 의존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다.”(Lee, 2018: 54)

    도덕 법칙과 같은 규범적 질서가 ‘이성의 사실’로서 우리에게 받아들여진다고 하여서 그 질서가 정당화에 대한 요구로부터 완전히 면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개념적 틀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 규범 역시 정당성이 의문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당성 물음에 적절하게 대답하지 못할 경우 수정될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정당화와 수정의 과정조차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규범적 질서를 일단 전제한 채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 우리는 우리의 개념적 틀에 근거하여 어떠한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을 지니고 있지 않다.”(Lee, 2018: 56)

    브랜덤이 제시한 ‘정당화에 대한 추정과 도전의 모형(default-and-challenge model of justification)’은 규범적 질서에 대한 정당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해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규제하기 위한 법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규범은 우선 추정적으로 정당화된다. 우리의 규범이 잘못된 것이라는 긍정적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이상 우리가 그 규범을 포기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규범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입증 부담(burden of proof)’은 그 규범에 도전하려는 사람이 떠맡아야 할 뿐이다. 도전이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의 규범을 정당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적어도 다르게 생각해야 할 어떤 긍정적 이유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 한 우리 자신에 대한 이러한 관념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대한 이러한 관념과 관련하여, 우리는 입증 부담을 현재 상황에 대한 도전자에게 돌릴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이러한 두꺼운 관념이 틀린 것으로 입증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상호적 관계가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제되는 그러한 합리적 행위자로서 받아들일 권리가 있다.”(Lee, 2018: 56)

    4. 우리의 실질적인 도덕적 목적과 도덕 법칙에 대한 옳음 조건

    도덕 규범을 준수해야 하는 실질적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정적(negative)’ 해석과 ‘긍정적(positive)’ 해석이라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전개될 수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합리적 행위자의 지위를 박탈당한 채 자연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도덕 규범을 준수한다. 이러한 경우 도덕 규범은 우리에게 인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정의의 의무(duty of justice)’를 제시한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공공선을 최대화하기 위해 도덕 규범을 준수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도덕 규범은 우리에게 도덕적 완전성과 타인의 행복을 지향해야 할 ‘덕의 의무(duty of virtue)’를 제시한다고 여겨질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따라, 부정적 해석에서조차 우리는 우리의 도덕적 목적이 실질적(substantial)이라고 할 수 있다.”(Lee, 2018: 58)

    도덕성의 원칙에 대한 칸트의 논의는 도덕 법칙이 이러한 실질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전제해야 하는 ‘옳음 조건(correctness condition)’을 탐구하려는 시도로서 이해될 수 있다. 칸트가 주장하는 도덕성의 원칙은 순전히 ‘형식적(formal)’이라는 점에서 얼핏 보기에는 도덕 법칙의 실질적 목적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칸트의 윤리학은 도덕성의 원칙이 결코 개인의 구체적-개별적 욕망에 근거하여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 나머지 실질적 도덕 이론으로부터 동떨어진 것처럼 여겨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형식적’이라는 용어는 ‘조건적’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즉, 구체적 도덕 법칙은 도덕성의 원칙이 제시하는 조건을 만족시킬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실질적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 “다음의 내용에서, 나는 도덕성에 대한 칸트의 원칙이, 구체적인 도덕 법칙들을 제공하기보다는, 도덕 법칙들을 위한 옳음 조건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형식적 원칙으로서 가장 잘 이해된다고 논증할 것이다.”(Lee, 2018: 59)

    여기서 ‘옳음 조건’이란 형식적 차원과 내용적 차원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가령, 특정한 단어에 대한 정의(definition)가 정확하다는 말은 (1) 그 정의가 피정의항을 더욱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을 바탕으로 논리적 형식에 따라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2) 피정의항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 용법에 부합하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가령, 타르스키의 진리 정의는 ‘옳음 조건’을 만족시키는 대표적 예시라고 할 수 있다. “x는 p일 경우 그리고 그 경우에만 참이다(x is true if and only if p).”라는 규약은 p에 대해 적절한 표현이 제시될 경우 형식적으로 올바를 뿐만 아니라, x가 대상 언어 L의 문장 s에 의해 대체되고 p가 그 문장을 번역한 메타 언어로 대체될 경우 L의 모든 문장에 대한 진리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정의로서 내용적으로도 올바르다.

    정언 명령에 대한 칸트의 논의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칸트가 제시한 정언 명령의 세 가지 공식인 ‘보편적 법칙의 공식(the formula of universal law)’, ‘목적 자체의 공식(the formula of the end in itself), ’자율성의 공식(the formula of autonomy)’은 도덕 법칙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기 위한 ‘옳음 조건’이라는 것이다.

    (1) ‘보편적 법칙의 공식’은 모든 합리적 행위자가 예외 없이 도덕 법칙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도덕 법칙을 위한 ‘형식적(formal)’ 옳음 조건을 제시한다. 즉, 모든 합리적 행위자는 도덕 법칙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도덕 법칙에 종속되는 것은 합리적 행위자밖에 없다. 따라서 도덕 법칙이란 모든 합리적 행위자에게 그리고 오직 합리적 행위자에게만 적용되는 법칙으로서의 형식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2) ‘목적 자체의 공식’은 합리적 행위자로서 우리 자신이 독특한 본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도덕 법칙을 위한 ‘내용적(material)’ 옳음 조건을 제시한다. 즉, 우리는 합리적 존재자로서 언제나 이미 특정한 공동체의 규범적 질서에 종속된 채 ‘공동체적 삶의 이익(benefits of communal life)’을 지향하면서 행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따라서 도덕 법칙이란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공동체의 규범적 질서를 따라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3) ‘자율성의 공식’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도덕 법칙을 자율적으로 부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도덕 법칙을 위한 ‘존재 근거(ratio essendi)’를 제시한다. 즉, 특정한 도덕 법칙이 우리에게 따라야 할 규범으로서 여겨지는 이유는 다른 어떠한 외적 토대가 그 법칙을 정초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그 법칙을 우리 자신의 행위를 규제하는 것으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일 뿐이다. 따라서 도덕 법칙이란 합리적 존재자로서 우리 자신이 지닌 자율성에 근거하여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도덕성의 원칙에 대한 칸트의 이러한 논의는 도덕 법칙의 실질적 목적에 대한 규정 역시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그 논의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떠한 법칙에 따라 행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논의에는 특정한 규범이 도덕 법칙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만족시켜야 하는 내용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즉, 도덕성의 원리는 도덕 법칙을 위한 ‘형식적’ 옳음 조건과 함께 ‘내용적’ 옳음 조건 역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만약 도덕성에 대한 칸트의 원칙이 이러한 의미에서의 형식적 원칙으로서 이해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실질적인 도덕적 목적과 이론적으로 조화될 수 있다. 왜냐하면 도덕성의 원칙은 도덕 법칙에 대한 내용적 옳음 조건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목적 자체의 공리가 단순히 정의의 의무뿐만 아니라, (그 원칙에 대한 긍정적 해석 하에서) 덕의 의무 역시 제공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Lee, 2018: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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