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제도는 어디서 시작된 제도인가요?
순장은 높은 사람이 사망할 시에 그의 소속이던 사람들을 함께 묻던 제도입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가혹한 제도인데요. 그렇다면 이 순장제도는 어디서 시작된 풍습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장풍습은 죽은 뒤에도 피장자(被葬者)의 평상시 생활이 재현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왕후 또는 귀족 등이 사망했을 경우에 첩(妾)·신하·종자(從者) 등을 함께 매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풍습은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그러나 그 중심은 신분계층이 존재하는 사회, 가부장제(家父長制)가 확립된 사회, 그리고 수메르·이집트·상(商) 등과 같은 절대왕권이 확립된 초기 고대문명 지역 및 그 영향권에 있던 지역이다.
중국에서는 상나라(商)의 마지막 도읍지인 은허(殷墟)에서 다수의 청동기의 부장과 함께 순장을 동반한 묘제(墓制)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하남성(河南省) 안양(安陽) 부근의 무관촌(武官村) 북쪽 대묘(大墓)에서는 79체의 인골(人骨)이, 후강(後崗)의 순장갱(殉葬坑)에서는 54개체의 인골이 발견되었다. 중국에서 순장이 성행했던 것은 서주(西周)까지이며, 그 이후에는 급격히 감소해 명기(明器) 또는 도용(陶俑)으로 대치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대 오리엔트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예리코(Jericho) 유적에서 발견된 남자 시체가 순장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본격적인 순장의 증거는 고대문명의 발생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유프라테스강 하류의 우르(Ur) 유적에서 레오나르드 울리경((Wooley, Sir Leonard)에 의해 발견된 것이 있다. 기원전 2600년경 아바르기왕(Abargi)의 부인인 수아비로 알려진 푸아비(Pu-Abi)묘에서 발견된 순장자는 80명 정도라고 추정된다. 그 중 6인은 완전무장한 병사였고, 9인은 비싼 장신구로 치장한 여자였다. 즉 관 옆의 여자종 2, 하프연주자 1, 썰매 옆 남자 2, 무덤 속 부인 10, 그리고 묘 입구 보초 5명 등 현재 74명의 순장이 확인되었다.
또한 이집트 아비도스에서 기원전 31세기경 제1왕조 2대 파라오인 아하(Hor-Aha) 왕의 무덤인 마스타바(mastaba) 발굴에서 송진과 뼈 조각이 묻어있는 천 조각이 나와, 제1왕조 때부터 미라를 만들었음이 확인되었다. 무덤 곁에서는 35구의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목의 경추(頸椎)에 자살(刺殺)이나 교살(絞殺)의 흔적을 보이고 있어 이들은 모두 순장으로 묻힌 것으로 해석된다.
마스타바 무덤으로는 아비도스 소재 1왕조 제르(Zer)와 사카라 소재 제2왕조 니네제르(Ninezer)의 무덤도 추가로 확인되고 있다. 제르(Zer) 왕묘 주변에서 궁녀 275인, 신하 43인을 순장한 묘가 발견되었다. 여기서 1.6㎞ 가량 떨어진 곳에는 269인이 묻혀 있었다. 이러한 순장풍습은 기원전 29세기에 들어와 없어지며, 도용(陶俑, shawabti)과 같은 조각품으로 대체된다.
고대 오리엔트문명은 다른 여러 문화적 요소와 함께 순장의 풍습도 널리 파급시켰다. 호머의 『일리아드』에서도 순장의 기록을 볼 수 있으며, 헤로도토스(Herodotus)도 스키타이왕의 순장모습을 기록하였다. 유럽에서는 고대 갈리아인·아일랜드인·불가리아인·슬라브인 사이에 순장 또는 순사의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요동(遼東)반도에 위치한 강상(崗上)·누상(樓上)의 청동기시대 집단 돌덧널무덤[石槨墓]들에서도 순장이 확인되었다. 북한학자들은 기원전 3011년의 평안북도 성천 용산리 순장묘에서도 순장이 확인된다며, 고조선 사회를 노예제사회(국가, 또는 대동강문명)라고 주장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순장 [殉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장은 왕과 귀족 등 권력자가 사망하여 무덤에 매장될 때 그에 종속되어 있던 사람을 함께 매장하는 장례 풍습으로, 죽음 후의 내세(來世)를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었던 권력자의 존재와 신분제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세계사적으로 고대 중국, 인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로마 등 동서양의 선진 문명권을 비롯하여 아메리카 대륙, 남태평양의 섬 등에서도 널리 행해졌으며, 특히 권력이 집중되거나 국가가 발생하는 단계에 출현하였습니다.
순장이 고대 사회에서 시행되기 위해서는 차별적 신분 구조와 지배체제가 갖춰져야 하며, 내세관에 의한 묘장제도가 확립되고, 강제로 사람을 죽여 장례를 치르는 데 대한 사회적 용인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순장은 비로소 장례 풍습으로 제도화될 수 있었습니다.
순장 제도의 여부는 고대 사회의 발전 단계를 설명할 때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며, 순장이 존재한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덜 발달되거나 미성숙한 사회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고대 한반도의 경우, 신라와 가야는 순장이 널리 성행한 데 비해 고구려, 백제는 순장이 시행되지 않았는데, 이는 고구려와 백제가 중국 중원과의 빈번한 문물교류를 통해 순장이 좋지 못한 장례 행위임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이해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한반도 순장의 증거는 가야와 신라가 자리하였던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확인된다. 발굴 조사 성과로 보아 순장이 가장 먼저 출현한 곳은 금관가야의 중심 고분군인 김해 대성동 고분군으로, 가장 빠른 순장묘는 3세기 후반에 조성된 대성동 29호분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 왕과 귀족 등 권력자가 사망하여 무덤에 매장될 때 그에 종속되어 있던 사람을 함께 죽여 매장하는 장례 풍습.
순장의 출현과 사회적 의미
순장은 왕과 귀족 등 권력자가 사망하여 무덤에 매장될 때 그에 종속되어 있던 사람을 함께 매장하는 장례 풍습으로, 죽음 후의 내세(來世)를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었던 권력자의 존재와 신분제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세계사적으로 고대 중국, 인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로마 등 동서양의 선진 문명권을 비롯하여 아메리카 대륙, 남태평양의 섬 등에서도 널리 행해졌으며, 특히 권력이 집중되거나 국가가 발생하는 단계에 출현하였다.
순장이 고대 사회에서 시행되기 위해서는 차별적 신분 구조와 지배체제가 갖춰져야 하며, 내세관에 의한 묘장제도(墓葬制度)가 확립되고, 강제로 사람을 죽여 장례를 치르는 데 대한 사회적 용인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순장은 비로소 장례 풍습으로 제도화될 수 있었다.
순장 제도의 여부는 고대 사회의 발전 단계를 설명할 때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며, 순장이 존재한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덜 발달되거나 미성숙한 사회로 인식되기도 한다.
고대 한반도의 경우, 신라와 가야는 순장이 널리 성행한 데 비해 고구려, 백제는 순장이 시행되지 않았는데, 이는 고구려와 백제가 중국 중원과의 빈번한 문물교류를 통해 순장이 좋지 못한 장례 행위임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