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확의 누이들은 왜 명나라 공녀로 갔나요?
조선초기에 명나라에서 후궁으로 들일 공녀를 바치라고 조선에 요구했는데 양갓집에서 보내지않으려고 다들 꺼렸는데 한확의 누이들은 어떻게 공녀로 뽑혀서 명으로 가게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종과 세종때 우의정과 영의정을 지낸 한확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의 누이동생들은 한양에서도 미모가 뛰어난것으로 유명했는데 태종때 첫째 누이를 명에 공녀로 보내면서 우의정으로 승진했고 세종때에는 둘째 누이를 명에 보내 영의정으로 승진을 하게되었습니다. 한확이 간통을 저질렀을때에도 세종은 한확의 누이들이 희생한것을 알았기에 내가 죄를 줄수 없는사람이라면서 그의 죄를 면제해주었다고합니다. 그의 첫째 누이는 중국어가 능통했고 미모와 지성이 뛰어나서 영락제의 이쁨을 받아 공녀로 와서 3년만에 영락제가 죽게되자 순장되고 맙니다 ( 중국의 황제가 죽으면 후궁들도 같이 죽는 풍습).그리하여 20살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을 메 자결을 하고 순장되는 비참한 운명이 되었다고하네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학의 누이는 여비가 되어 영락제의 사랑을 받는다고 합니다. 한확은 그러나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고 그는 명나라의 조정에 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누나를 명나라의 공녀로 보내서, 영락제의 후궁인 강혜장숙 여비 한씨 (여비)가 되게 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는 출세에 눈이 먼 사람이였나 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확은 본관이 청주인 고려 말의 세족입니다. 한확에게는 여동생이 두명 있었는데 각기 명 3대 황제 성조 영락제와 5대 황제 성종 선덕제의 후궁이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확은 대명사신으로 자주 파견되었고 조선과 명의 외교에 주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조선왕실과도 혼인을 맺는데 막내딸은 수양대군의 장남인 덕종과 혼인하였고 훗날 소혜황후 인수대비가 되었습니다. 즉 현확은 성종의 외할아버지입니다. 그는 세조 즉위에도 공을 세워 정난공신 좌익공신이 되었습니다. 1417년 한확은 명 성조의 후궁으로 선발된 동생과 황하신의 딸 황씨를 따라 명으로 출발했고 동생은 여비가 되었고 한확은 15살로 광록시 소경이 되었습니다. 광록시 혹은 홍려시의 경 소경 등은 조선에서 진헌한 처녀들이 가족과 동행하여 명에 갔을 때 그 가족에게 주어졌던 관직들이었습니다. 한확은 이후 대명외교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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