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 제도는 언제까지 있었나요?
사극을 보면 첩을 데리고 살면서 첩의 자식이 천대받는 내용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시대 뿐만아니라 개화기 이후에도 계속 되었는데요. 법적으로 금지된건 언제부터인가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첩재도가 없어진 시기는 1930년대부터 일부일처제의 민법 체계가 만들어질때 부터 입니다.
1920년대는 일제 강점기때 근대적 법률이 도입되면서 일부일처제 사회접 논의가 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첩의 제도 첩의 폐지는 1948년 대한민국 헌법 제정 시 폐지 되었으나 이 제도가 생긴 이후인 1960년대 부터는 일부로 첩을 들인다음 전처에게 이혼을 요구한 뒤 첩에 해당하는 사람과 재혼하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축첩제도는 1915년 일제강점기 시절 첩의 호적 입적을 금지함에 따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첩 제도는 유력자들 사이에 여전히 있었고, 1948년 대한민국 헌법에서 다시 축첩제를 부정하였으나 실제로 관습이 사라지게 된것은 1960년대 군사정권 이후 첩을 두는 공무원이나 경찰에 대한 중징계를 내리며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시대인 1920년대에 근대적 법률이 도입되면서, 일부일처제 가족을 구성하고 첩을 두는 것과 이혼에 대한 이슈가 사회적으로 부각이 되어 1921년 일본 가족법이 조선에 적용되게 됩니다. 1920대를 거치면서 근대적 민법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부일처제’가 법적으로 정착되고, 혼인신고를 통해 부부의 법률적 효력을 인정하는 법률혼주의는 1923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했구요. 1930년 이후에는 첩을 두는것을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일부일처제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민법의 체계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나라에서 일부다처제가 끝난 시점은 1930년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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