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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한파리매77
활달한파리매7723.06.20

조선시대에 왕을 가르치는 역활을 했던 사람에 대해 궁금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왕이 어릴때나 다양한 것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실제 어떤 것들을 배웠으며 이런 왕을 가르치는 사람은 어떤 분들이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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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왕자의 교육과

    더불어 예의범절 교육도 일찍부터 가르쳐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했습니다.

    아동기에는 경륜과 심신 강화 교육, 유교경전으로 덕성과 자질을 함양하고 역사교육을 통해 역사적 지식과 안목을 길렀습니다. 이 시기에 특별한 점은 왕이 왕세자에게 수시로 묻고 답하는 방식을 통해 지혜로운 판단력과 언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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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빈객(賓客)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2품 관직이다. 세자시강원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여 서연(書筵)을 전담하였다. 빈객은 시강관의 임무를 맡아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주로 겸직으로 임명되었으며, 세자의 스승이었다. 시강원의 고위직으로 운영과 관원 임용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세자는 세 살이 넘으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며 아주 어린 나이부터 학문뿐 아니라 예절과 법도, 말타기와 활쏘기 등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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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태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홍문관 경연관으로 '시독' 혹은 '시강' 이 있어 왕이나 왕세자들에게 경서를 강의했습니다.


    시강은 광무 원년 1897년에 직책이 만들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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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들은 어렸을 떄 부터 개인적인 스승을 두어 교육을 하였습니다. 조선 시대 왕자사부는 왕의 적자인 대군과 왕의 서자인 왕자군의 교육을 담당한 강학청의 관원을 말하는데 대군과 왕자군, 그리고 왕손은 모두 6세가 되면 스승을 두어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대군과 왕자군의 교육 기관은 강학청이라고 하고, 왕손의 교육 기관은 교학청(敎學廳)이라고 하였습니다. 대군과 왕자군의 스승은 사부이고, 왕손의 스승은 교부(敎傅)라 하였다고 합니다. 모두 종9품의 권설직(權設職)이었고 900일의 임기를 마치면 6품으로 승급되었다고 합니다. 왕세자의 사부가 정1품, 왕세손의 사부는 종1품, 원자(元子)의 사부는 정2품, 원손(元孫)의 사부는 종2품인 것에 비하면 관직의 등급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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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건국 직후 태조가 관제를 새로 정할 때 경연에는 종3품 강독관(講讀官) 4명, 정4품 검토관 2명을 두었다. 시독관은 태조 대에 관제를 정할 때는 없다가 정종 즉위 후 경연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종 대 경연에 참여하였던 경연관으로는 시강관과 시독관이 있었다. 이로 보았을 때 태조 대에 두었던 강독관이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화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 대에 집현전이 창설됨에 따라 1420년(세종 2)에는 집현전 관원들이 경연관을 겸직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종3품 직제학(直提學) 1~2명이 시독관을 역임하게 되었다. 예종이 즉위한 후 경연의 당하관 이하는 낭관 6명을 두고 모두 시강관으로 부르도록 하였다. 시독관도 이에 포함되었지만 관직명은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종이 즉위한 후 세조 대에 폐지한 집현전의 기능을 이어 홍문관을 만들었고, 경연관은 홍문관 관원이 겸직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때 시독관 관직이 다시 설치되었다.


    시독관은 정5품 교리(校理) 2명, 종5품 부교리(副校理) 2명으로 모두 4명이 담당하는 것으로 『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정조 대에 규장각을 설치한 후 1781년(정조 5)에는 규장각 직각(直閣)이 본래 품계에 따라 시강관 · 시독관 · 검토관을 겸직하도록 하였다.

    조선에서는 경연관 중 시독관이 시강관보다 하위직이었다. 그러나 중국 송나라에서는 황제가 시독(侍讀)을 두고 경연을 하면서 질문하고 토론하였고, 시독학사(侍讀學士)라 불렀는데, 시독학사가 시강학사(侍講學士)보다 상위직이었다. 시독관은 경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국왕과 문답을 하고, 경사를 강독하며 국왕의 학문적 성취를 도왔던 경연관으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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