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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캐슬
아이언캐슬23.12.27

조선시대 호패에는 어떤정보들이 기재되어있었는가요?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주민등록증 같은 개념의 호패라는것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조선시대 호패에는 어떤정보들이 기재되어있었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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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분에 따라 다르게 제작된 호패

    17세기 무신이었던 박진영의 호패.

    호패는 2품 이상과 삼사(三司)의 관원인 경우에만 관청에서 제작한 것을 지급받았고, 대부분의 경우는 각자가 호패에 기재할 사항인 성명, 출생신분, 직역, 거주지 등을 단자(單子)로 만들어 관청에 제출하여 관청 단자와 대조하여 낙인 받은 뒤에 지급받았다. 신분에 따라 호패의 재질과 기재내용이 다른데, <속대전(續大典)>의 규정에 따르면 2품 이상은 아패(牙牌), 3품 이하 잡과 입격자는 각패(角牌), 생원, 진사는 황양목패(黃楊木牌), 잡직, 서인, 서리는 소목방패(小木方牌), 공천, 사천의 경우는 대목방패(大木方牌)를 사용했다. 또 개인은 자신의 지위 상승에 따라 다른 재질의 호패를 착용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3실에는 문, 무과에 급제한 고위 관료의 호패가 전시되어 있다. 하나는 17세기에 활약한 무신인 박진영(朴震英, 1569∼1641)의 호패이고, 또 하나는 18세기에 활동한 문신인 김희(金憙, 1729∼1800)의 호패이다. 이 두 호패는 호패의 내용과 모양에서 차이를 보이고 호패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박진영 호패는 앞면에 “박진영(朴震英) 기사생(己巳生) 갑오무과(甲午武科)”라 적혀 있고, 뒷면에 아무런 글씨가 없이 낙인만 찍혀 있다. 이를 통해, 박진영이라는 사람이 기사년(선조 2, 1569)에 태어나 갑오년(선조 27, 1594, 당년 26세)에 무과에 급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호패의 제작 시기는 호패에 제작 년도가 명기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그러나 착용자의 생존 시기와 관직 활동을 고려하면, 광해군, 인조 대에 만들어진 호패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희 호패는 앞면에 "김희(金憙) 기유생(己酉生) 계사문과(癸巳文科)"라 적혀 있고, 뒷면에 "갑진(甲辰)"이라 적혀 있고 낙인이 찍혀 있다. 이를 통해, 김희라는 사람이 기유년(영조 5, 1729)에 태어나 계사년(영조 49, 1773, 당년 45세)에 문과에 급제한 사람이며, 갑진년(甲辰年, 정조 8, 1784)에 이 호패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