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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찬밀잠자리170
대찬밀잠자리17023.06.24

제주도는 언제부터 우리땅이었나요?

조선시대에는 탐라라고 이름이 있었던거 같은데 고려시대나 그 이전인 삼국시대에도 제주도가 우리나라 땅으로 속해있었나요 아니면 독립적인 세력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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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에도 백제, 신라에 속국이었으니

    우리나라 영토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탐라국에 대한 정식 첫 기록은 기원후 3세기 중국 삼국시대의 기록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나오는 ‘주호(州胡)’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는 탐라를 주호로 불렀으며 서쪽 바다 한 가운데의 큰 섬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키도 작은 편이고 언어도 다르게 들렸으며 소나 돼지 기르길 좋아하며 하의를 입지 않았고 배를 타면서 물건을 사고 팔았다고 다소 미개한 식으로 묘사했다. 중국의 《신당서》에서는 “이 나라는 처음에 백제에 복속하였다가 인덕 연간(663∼664)에 그 나라 추장이 당나라에 들어가 황제를 따라 태산에 이르렀는데, 그 뒤로는 신라에 복속되었다.”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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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주도의 원래 이름은 탐라(耽羅)인데 이 탐라는 전근대 제주도에 존재했던 왕국입니다. 통일신라시대까지 한반도의 나라들과 교류를 하고 후삼국 시대에 고려가 분열된 삼국을 통일한 뒤 현으로 복속되었으며, 400년에 걸친 성주시대 동안 제주 고씨가 성주로서 서탐라를 다스리고 남평 문씨가 왕자로서 동탐라를 다스리는 등 한동안 자치권을 유지하다가 완전하게 우리 나라에 병합 된 것은 15세기 초반에 조선의 3대 왕인 태종 시기에 완전 병합이 되면서 조선의 땅이 되며 중앙 정부의 직접 적인 간섭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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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탐라국이라고 일찍이 불렸고, 고려 숙종시대에 정식으로 우리의 영토화 되었다는 군요. 그 이전에는 백제의 한 제후국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나봅니다. 그리고 제주도 원주민의 후예는 저기 나온대로 고, 양, 부는 제주도의 토착민 출신이라고 인식하면 어느 정도 맞을겁니다..^^

    제주의 유래

    제주도의 옛 이름인 '탐라'의 의미는 '깊고 먼 바다의 섬나라'라는 뜻이라 한다. 그 밖에 문헌에 따라 탐모라,서모라,섬라,담라,둔라,모라,탁라,영주,제주 등 이다. 영주는 중국의 신선설에서 비롯되었으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고도 불렀다.지금의 제주란 명칭은 고려 고종(1214년)때부터 사용하기 시작 하였다.탁라의 탁자는 '풀입 책'이며 라 자는 '벌릴 라'로 나라를 뜻한다. 그래서 탁라는 '풀로 짠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의 뜻이라고 한다. 제주는 '바다를 건너가는 고을'이란 뜻이다.

    제주의 역사적 배경

    제주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섬의 북부지방인 제주시와 북제주군 일대에서 선사문화 유적 발견으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원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 양, 부 삼성(三姓)이 건국하였다는 삼성 설화가 있으나 그 정확한 연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제주도의 역사는 호주, 보라, 탐반라,탐라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우는 부족국가로 이어져 내려 왔으나 웅대한 왕국이나 고도의 문화국가를 이루지는 못하여 백제,신라,고려의 속국이 되면서 독립국가적인 명맥만을 이어 오다가 고려 숙종10년 (서기1105년)에 비로소 고려의 중앙집권제 밑에 들어가 탐라군이 되었으며 제주라는 명칭은 고려 고종때(서기1214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고려왕조가 원나라의 침략을 받아 이에 항거하여 일어난 삼별초가 제주를 최후거점으로 항거를 전개하므로 고려 원종14년 (1273년) 몽고군이 제주를 침범하여 약 100 여년간 원의 직할통치인 탐라총관부 에 의하여 외국의 통치를 받은 쓰라린 역사를 기록 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제주는 버림받은 오지도서 취급을 받아 조선조의 정객 과 학자들의 유배지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나 이때 유배되어 내려온 우암 송시열, 추사 김정희등 많은 정객과 학자들로 인하여 제주에 유학의 보급과 문화 발전에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조선조 이후 日帝治下를 거쳐 대한민국이 수립되면서 전라남도에서 분리 "도" 로 승격하여 오늘의 제주도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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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는 정치적으로 백제의 번국이었으나 백제가 멸망하자 신라에 입조하였다. 그러나, 백제 유민들이 탐라에 망명하여 백제 부흥운동을 꾀하기도 하였다.
    후삼국이 정립되자 탐라는 고려 태조의 사신을 보내어 토산품을 바쳤다. (태조 8년, 925년) 그러나, 후삼국 통일 후 태조가 탐라에 대하여 신라 때의 봉작을 그대로 주어 복속하기를 바랐으나, 거부하므로 군사를 파견하여 공략하였고 이에 탐라왕 고자견이 굴복하여 태자 고말로를 고려에 입조시켰다.
    숙종 10년(1105년) 숙종은 왕권을 강화하려는 생각으로 탐라를 군으로 고치고 중앙에서 관원을 파견하여 민정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러나 이 때에도 탐라의 자주성은 계속되었고, 삼별초의 제주도 입도와 여/몽 연합군의 공략시기까지 그 주체성을 어느 정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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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탐라(耽羅)는 제주도의 옛 명칭이자 그곳에 존재했던 국가의 이름입니다.
    약 12세기까지 독립 상태를 유지했으며, 조선 초기에 완전히 본국에 편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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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의 제주도의 명칭은 '동영주', '섭라', '탐모라', '탁라', '탐라' 등으로 불리워졌고, 이들 명칭은 모두 '섬나라' 라는

    뜻입니다.


    제주도의 개벽 설화인 3성 신화에 의하면 태고에는 땅속으로 솟아나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 세 신인들은 '벽랑국' 에서 오곡의 씨앗과 송아지, 망아지등을 갖고 목함을 타고 제주도 동쪽 해상으로 들어온

    세 공주를 맞아 혼례를 올렸습니다.


    이 때부터 이들은 오곡의 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소와 말을 기르며 살았습니다. 제주시는 탐라시조의 개국영지로 근세에 이르러 삼성혈을 중심으로 한 성내와 중산간 지대의 자연마을 25개리를 합쳐 제주군 중면이라 칭하였으며, 서기 1913년 제주도 제주면으로

    개칭하게 되었습니다.

    출처: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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